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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창의가 멈추면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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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11 22:13:58 수정 : 2017-12-11 22: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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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 혁명의 싹 틔운
김대중정부의 ‘자유시장경제’
이념과 규제로는
‘무역 2조달러 시대’ 열지 못해
1964년 11월 30일은 역사적인 날이다. 깻잎, 은행잎, 이끼까지 내다팔아 수출 1억달러를 일군 날이다. 이후 피눈물 나는 개발의 역사(役事). 13년 뒤인 1977년 마침내 수출 100억달러 시대의 문을 열었다. 반세기 넘도록 ‘무역의 날’을 기념하는 것은 수출로써 나라를 일으키는 실사구시 생각 때문이다. 동맹(東盟)이 고구려 5부(部)의 단결과 번영을 기원한 제천의식이라면 무역의 날은 수출입국(輸出立國)을 다짐하는 현대판 제천의식이다.

성장론이라면 애써 외면하는 진보 정치인에 둘러싸인 문재인 대통령. 무역의 날 이런 말을 했다.

강호원 논설위원
“우리는 세계 6위 수출대국으로 무역 1조달러 시대를 다시 열었다.” “이제 무역 2조달러 시대를 열자.”

눈이 번쩍 뜨인다. 왜? 분배 철학으로 무장한 진보 정치인에게서는 듣기 힘든 말이다. 생각의 지평이 넓어진 걸까. 한 가지를 묻게 된다. “2조달러 시대를 어떻게 열겠다는 것인가.” 재정지출을 늘리고 공공부문을 키워? 그럴 수 있을까. 1조달러 시대를 어찌 열었는지를 돌아보면 답은 나온다.

반세기에 걸친 수출의 역사. 본질은 무엇일까. ‘나침반 없는 항해’다. 누구도 가 보지 않은 길을 열었기에 세계 경제사에 보기 힘든 대박을 터뜨렸다. 종속이론까지 허물었다. 그러기에 잘살기를 바라는 나라는 모두 한국이 간 길을 따른다. 지금의 중국을 만든 덩샤오핑의 개방정책도 우리나라를 모델로 삼지 않았던가. 관치(官治) 리더십과 외자로 부족한 자본을 메우고, 수출을 통해 국부를 일구는 과정이 똑같다.

성공은 천행일까. 이 세상에 저절로 입에 떨어지는 감이 어디 있겠는가. ‘미래를 일구는 창의(創意)’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과거 개발연대 때만 그런 것도 아니다. 정보통신기술(ICT)이 나라경제의 부침을 가른 2000년대 ‘3.5차 산업혁명시대’에도 똑같았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지금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이들 산업이 있기에 무역 1조달러 시대도 있다.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반도체의 씨가 뿌려진 것은 1974년이다. 삼성이 초보적인 집적회로를 만드는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 반도체 역사는 시작된다. 당시 경제기획원과 상공부에서 했다는 말, “기술자가 없지 않느냐.” 모두가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일본의 ‘반도체 선생’을 몰래 불러와 묻고 개발한 결과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성공한다. 반도체 굴기는 얼마나 대단할까. 올해 경제성장률의 3분의 1은 반도체가 일궈낸 성과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1997년 개인휴대통신(PCS)으로부터 시작된 이동통신 혁명. 이후 CDMA(다중코드분할방식·동기식)와 GSM(비동기식) 표준 논쟁이 불붙고, 아무도 가지 않은 CDMA의 길을 걸은 한국. “통신이나 가능할까”는 의구심을 떨치고 대성공한다. CDMA 통신기술 개발에 뛰어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민간 기업들. 미·일·유럽연합(EU)에 비해 기술초보였던 우리 산업이 스마트폰 큰손이 된 것도, 삼성이 애플과 특허경쟁을 하는 것도 이로부터 비롯된다.

나라의 운명을 가른 반도체와 스마트폰. 창의가 일군 ‘신의 한수’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은 어떤 환경에서 탄생했을까. 1999년 출범한 김대중(DJ)정부가 큰 역할을 한다. ‘규제·노동 개혁’을 외친 김영삼(YS)정부의 경제철학을 이은 DJ. ‘자유시장경제’를 외쳤다. ICT 개화의 싹이 튼 것은 그때다. 간섭을 삼갔다. 민간 기업의 창의가 발동되고, 창의는 ICT의 개화로 이어졌다. 우리 정보통신산업의 들보와도 같은 CDMA 기술 기반은 그때 쌓은 금자탑이다. 지금은 그것을 먹고산다.

노무현정부의 궤는 달랐다. 자유시장경제와 개방의 목소리는 사그라졌다. DJ 때 자유시장경제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경제특구 전략’. 한국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파격적인 방안까지 담은 경제특구는 국가산업단지보다 못한 규제 천국으로 변했다. 6곳의 경제자유구역이 바로 그 유산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DJ의 길을 택할까, 노무현의 길을 택할까. 아널드 J 토인비의 말, “노 젓는 손을 멈추면 지고 만다.” 4차 산업혁명의 막은 올랐다. 창의는 수출을 일으키고 나라를 일으킨다. 창의가 멈춘 나라에는 미래도 없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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