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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대법원장 3인의 ‘특별한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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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11 20:57:35 수정 : 2017-12-11 22: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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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별세한 이일규 전 대법원장 10주기 추념식이 지난 1일 대법원에서 열렸다. 행사장 맨 앞줄 귀빈석에는 김명수 대법원장과 전직 대법원장 4명이 나란히 앉았다. 그들 가운데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한 노신사가 눈에 띄었다. 올해 93세로 생존한 역대 사법부 수장 중 최고 선임자인 김용철 전 대법원장이었다. 국민의례를 하러 일어설 때 지팡이를 짚기도 했지만 행사가 끝날 때까지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추념의 대상인 이일규(이하 존칭 생략), 법원을 대표해 추념사를 한 김명수, 그리고 조용히 행사를 참관한 김용철 3명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비록 고인이 된 이일규는 사진과 영상으로만 함께했지만 셋이 한 곳에 모인 것 자체가 파란만장한 우리 사법사를 압축해 보여준다.

김태훈 사회부 차장
사회 곳곳에서 민주화 열기가 분출하던 1988년 6월15일 젊은 판사 59명이 성명을 발표했다. 현대사에 ‘제2차 사법파동’으로 기록된 사건이다. 법관들은 대뜸 “사법부 수장 등 대법원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두환정권 말기인 1986년 대한민국 제9대 대법원장에 취임해 겨우 2년 일한 김용철더러 그만 물러나라는 것이었다.

성명에 참여한 59명 속에는 당시 서울지법 북부지원 소속 3년차 판사인 29살 청년 김명수도 있었다. 지방에 근무하는 법관들까지 속속 동참하며 서명자는 430명으로 늘었다. 김용철은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성명서를 읽고 사법부에 대한 충정을 느낄 수 있었다”며 되레 소장 판사들을 격려했다. 성명 발표 닷새 만에 김용철은 대법원장직을 내려놨다. “이렇게 해서 한 시대가 가고 새 시대가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한마디만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후임 대법원장은 2년 전 대법관을 그만두고 재야 법조계로 물러나 있던 이일규한테 돌아갔다. 경남 통영이 고향인 이일규는 유신과 5공을 거치며 군사정권에 비판적인 소수의견을 많이 내 ‘통영 대꼬챙이’란 별명을 얻었다. 김용철과는 1975년부터 무려 11년간 대법원에서 한솥밥을 먹은 처지였다. 민주화의 파도에 휩쓸려간 옛 동료를 대신해 대법원장이 된 이일규의 취임 일성은 ‘부당한 외풍으로부터 사법부를 지키는 방어벽이 되겠다’는 다짐이었다.

어느덧 강산이 세 번 바뀔 세월이 흘러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은 58세 김명수가 추념식장 내빈석에서 일어났다. 이일규의 공을 기리는 연설을 하러 단상에 오르기 전 그는 김용철에게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그때 그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까마득한 후배 법관이 사법부 수장으로 성장한 모습에 김용철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하늘에서 둘을 내려다보던 이일규도 격동의 1980년대가 떠올라 남다른 감회에 사로잡혔을 것만 같다.

김명수는 추념사에서 “우리가 사는 시대는 29년 전 (이일규) 선생께서 대법원장에 취임하던 때와 많은 차이가 있다”면서도 “우리는 오늘날 여전히 재판의 독립 내지 법관의 독립이라는 화두와 마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판의 독립을 지켜내는 것이 대법원장의 첫째가는 의무”라고 선언했다. 이 약속이 꼭 지켜질 수 있도록 선배 사법부 수장들이 그에게 힘과 지혜를 모아주길 바란다.

김태훈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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