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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小窓多明] 연말 음주 과하면 독… 좋은 주계는 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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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11 20:58:21 수정 : 2017-12-11 22: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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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전환에 도움 주는 술 한잔
도를 벗어나면 화 부르기 십상
최근 주취감형 국민들 우려 커
몸 망가지기 전에 스스로 삼가야
고려의 시인이자 문신인 이규보는 평생 거문고와 술과 시를 좋아해 스스로를 삼혹호(三酷好)라고 호를 내세운 것으로 유명하지만, 중국 후한 때의 양병(楊秉·92~165)은 스스로 삼불혹(三不惑)이라고 했다. 술과 여색과 재물에 유혹을 받아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천성적으로 술을 싫어했고, 부인과 사별했으나 재취(再娶)하지 않았고, 물욕(物慾)이 없이 청렴했다고 칭송을 들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한국 남자로서 재물에 대한 유혹은 그렇다고 쳐도 연말에 술을 멀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나이 사십을 넘지 않더라도 진정한 불혹이 아닐 수 없다. 사회가 그냥 두지 않기 때문이다.

옛날에 장기나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걸핏하면 ‘논어’의 공자말씀을 끌어댔다. “온종일 먹고 마시기만 하며 마음 쓰는 곳이 없다면 지극히 곤란한 일이다. 장기나 바둑이 있는데, 차라리 그런 것이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공자를 끌어댄다. “공자는 술을 마시되 양을 미리 정하지 않았다”는 ‘논어’ 향당(鄕黨)의 묘사를 인용해 술자리 핑계를 댄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마지막 말은 인용하지 않는다. 술은 정해진 일정량이 없었으나 “흐트러지지는 않았다(不及亂)”란 말이 뒤에 꼬리표로 붙어 있는 것을 짐짓 모른 척하는 것이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술은 오랜 옛날 과일이나 곡류와 같은 당질 원료에서 야생의 미생물이 자연적으로 생육해 알코올이 생성됐고, 이러한 발효 산물을 우연한 기회에 사람들이 마시고 맛이 있음을 알게 되자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국에는 예전에 감주(甘酒)만 있고 술은 없었는데, 우임금 때에 의적(儀狄)이란 사람이 술을 만들어 바쳤다고 하는 전설이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런 정황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다만 우임금이 맛을 보고 “후세에 반드시 술 때문에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의적을 멀리했다는 것을 보면 술이란 것에 해독이 있음을 일찍부터 알았다는 뜻이다.

당(唐)나라의 왕부(王敷)는 “군신이 화합하는 것도 술의 덕이요, 귀인 고관이 마시는 것으로서, 술 한 잔은 건강의 근원이고 기분을 전환하며 인물을 만들고 예의를 가르친다. 또 궁중의 음악도 술에서 생긴 것이다”라고 ‘다주론(茶酒論)’에서 술의 효능을 자랑한다. 그러나 ‘분별선악소기경(分別善惡所起經)’에서는 술 마시고 취하기를 즐길 때 서른여섯 가지의 허물이 나타난다. 부모(父母) 인군(仁君)을 공경하지 않게 돼 위 아래가 없어지고, 두 번 말하기와 잔소리가 늘고, 하늘을 꾸짖거나 사당에 오줌 누는 일도 서슴지 않으며, 길 가운데 눕거나 소지품을 잃기도 하고, 비틀거리다가 구덩이에 떨어지기도 한다. 또 심해지면 처자가 굶는 것을 두렵게 여기지 않고, 법을 겁내지 않게 되며, 부끄러움이 없어져 심하면 옷도 벗은 벌거숭이로 다닌다. 남의 부녀자 앞에서 어지러운 말로 희롱하기를 예사로 여기며, 툭하면 옆 사람과 다투려 하고, 순간적으로 흥분하여 집안 세간을 부수기도 하고, 집안사람들과 사사건건 충돌한다. 이러다 보니 집안에서건 길에서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도 잘못된 줄도 모른다고 했다.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또 많은 곡식이 들어간다. 이 때문에 술로 인해 피해를 줄이자고 역대 제왕들이 술의 제조나 복용을 금지하기도 했으나 완전히 금지할 수는 없었다. 한나라를 건국한 유비(劉備)가 술 제조를 금하고 술 만드는 도구를 가진 사람을 찾아내 처벌하려고 하자 간옹(簡雍)이 길 가던 어떤 남자를 가리키며 그를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유비가 이유를 묻자 “저 남자는 음행의 도구를 소유하고 있으니 반드시 음행할 것이다”라고 말하자 이에 유비가 술 도구가 있던 사람을 용서해 주었다.

삼국시대 위(魏)나라 때에는 조조가 금주령을 내렸는데 상서랑(尙書郞)으로 있던 서막(徐邈)이 술을 먹고 대취하고는 추궁을 당하자 “나는 성인(聖人)에 취하였다”고 했다. 조조가 대로해 죽이려 하자 다른 사람이 그를 위해 해명하기를 “평소에 취객들이 청주를 성인이라 하고 탁주를 현인이라 합니다. 서막은 성품이 조심스러운데 우연히 술에 취해 한 말일 뿐입니다”라고 하니 조조가 서막을 용서했다고 한다. 금지된 술이란 말 대신 성인, 현인이라고 은어(隱語)를 쓴 것이지만 그처럼 술을 높여 부를 정도로 완전히 금지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최근 인륜을 벗어난 온갖 범죄가 자주 일어나고 있는데, 법정에서 피의자가 술에 취한 경우엔 형을 줄여주는 판결이 나오면서 국민의 우려가 늘어나고 있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조두순의 출소를 막아 달라는 청원과 함께 주취범죄 감형을 폐지해 달라는 국민청원에 20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죄를 지은 사람을 무조건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술에 취했다고 감형해 주기 시작하면 더욱 술의 폐해가 늘어날 것이다. 술꾼들에게는 대목이라 할 요즘 연말, 지난해보다는 사회가 안정화된 탓에 술자리가 많아진 듯하고 회식이니, 2차 3차니, 노래방이니 하며 몰려다닌다는 소식도 많이 들린다. 더구나 여성 음주도 늘어나 가끔 길거리에서 추태를 보이기도 한다.

옛사람들은 술도 도(道)로서 마실 뿐 지나치게 술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해 많은 주계(酒戒)를 만들었지만, 술을 완전히 끊을 수 없다면 술로 몸과 이웃을 망치기 전에 스스로 삼가는 것 이상으로 좋은 주계는 없을 것이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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