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김욱동칼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참뜻

관련이슈 김욱동 칼럼 , 오피니언 최신(구)

입력 : 2017-12-11 00:01:39 수정 : 2017-12-11 00:01:3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고귀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을’/ 로마제국 귀족들 불문율로 삼아 / 사회적 의무 실천한다는 점에서 / 신분 떠나 노예와 다르다고 생각 귀족에게는 의무가 따른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14세기 백년전쟁을 만나게 된다. 당시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영국군에 완강히 저항했지만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점령자는 그동안의 반항에 대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 도시의 대표 여섯 명의 목을 요구했다. 칼레 시민들이 머뭇거리자 이 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피에르가 처형을 자청하자 곧이어 시장, 상인, 법률가 등 귀족이 잇달아 동참했다. 그러나 영국 왕은 죽음을 자처했던 시민 여섯 명의 희생정신에 감복해 그들을 살려줬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바로 이 일화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이 표현의 역사는 좀 더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제국 귀족들은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정신을 불문율로 삼았다. 로마제국의 귀족은 자신들이 노예와 다른 점은 단순히 신분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실천한다는 점에서 노예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최근 이른바 ‘갑질’논란이 심심치 않게 매스컴을 장식한다. 갑질이란 두말할 나위 없이 계약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말이다. 계약서에서는 으레 ‘갑을관계’가 성립되는데 갑은 계약을 주도하는 쪽을, 을은 갑과 계약하는 쪽을 말한다. 그러니까 갑은 을보다 우위의 위치에 있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해야 하는 쪽이다. 갑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좋지 않은 행위를 하는 ‘갑질’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위반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지난여름 한 제약회사의 회장이 전직 운전기사에게 폭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은 내사에 착수했고, 회장을 피의자로 입건한 적이 있다. 회장은 직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회전 전용차로로 진입하라고 지시하는 등 상습적으로 불법운전을 지시하고 운전기사에게 폭언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국내의 한 치킨업체 회장도 가맹점을 상대로 폭언과 욕설을 퍼부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렇게 의혹이 불거지자 부회장이 직접 해당 점포를 방문해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단순 사과가 아니라 대형 로펌 변호사를 통해 가맹점주에게 투자를 제안하며 회유한 정황도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한 대기업 회장의 아들이 대형 로펌 변호사들을 폭행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갑질’논란이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경찰은 갑질을 한 사람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남아 있다.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요즘 모 방송국에서 방영 중인 주말 드라마에 등장하는 작중 인물이 보여주는 몇몇 행동도 갑질이라는 비판을 모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드라마에서 재벌 회장의 사위인 부회장은 가짜 딸 문제를 사죄하기 위해 회사로 찾아온 아버지를 무시하기 일쑤다. 아버지가 실패한 사업에 재기하면 큰딸을 찾아올 생각이었다고 말하자, 부회장은 몹시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사업?’ ‘재기?’ 하며 반문한다. ‘대표’로 일컫는 재벌 회장의 큰딸은 가짜 딸의 어머니에게 그들이 살던 집을 ‘헛간’이라고 부른다. 더구나 재벌 회장 딸은 가짜 딸의 어머니를 자기 집으로 불러 호통치면서 딸이 평생 임시직도 얻지 못하도록 만들겠다고 위협한다. 또한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큰딸의 형제들마저 직장에서 쫓아내겠다고 협박한다. 가짜 딸의 어머니가 모두 자신이 저지른 죄일 뿐 딸에게는 아무 죄가 없다고 용서를 빌자, 재벌 회장 딸은 서슴지 않고 “그런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난 게 바로 죄”라고 내뱉는다.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모두 갑질을 일삼는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관심과 배려를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재산, 권력,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명예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다시 한번 곰곰이 되새겨 볼 때다.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