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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민초 500명 ‘낮은 목소리’ 담은… 유쾌한 日 견문록

입력 : 2017-12-07 20:53:54 수정 : 2017-12-07 20:5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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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조선통신사’ 펴낸 김종광 / 1763년 日 떠난 ‘계미사행단’ / 당시 여정 관련 서적 많지만 / 전모 아우르는 소설은 없어 / 文士 원중거부터 역관·종까지 / 사내들 여정 다각도로 풀어내 / 영웅호걸·여인 없이 흥미진진 / ‘임꺽정’ 같은 소설로 남았으면 “우리가 뭘 잘못했냐. 우리 역관은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일 다했다. 니들은 한 게 하나도 없어. 왜 우리한테 만날 타박이야. 우리가 인삼을 몰래 팔아먹어? 몰라서 그래? 우리 인삼하고 왜국 은하고 바꾸는 거잖아. 유황도 수입하고. 유황 없으면 뭘로 화약 만들래? 이거 통신사, 은하고 유황 때문에 하는 거야. 이 멍청이들아.”

김종광(46)이 펴낸 소설 ‘조선통신사’(전2권·다산북스·사진)에서 역관 현태심은 울부짖으며 차별대우를 억울해한다.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일은 그네들이 다 하는데 명분만 찾으면서 거들먹거리는 상전들에게 대놓고 미친 척 비판하는 맥락이다. 김종광이 규정하는 조선통신사의 이면이 잘 담겨 있는 대목이다. 김종광은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파견된 조선통신사에 대해 “학자들은 문화교류를 강조하지만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 중에서도 평화를 확보하는 한편으로 무역로의 거점도 확보하는 역할이 제일 컸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어지는 역관의 하소연은 김종광의 이런 생각을 압축한다.

계미통신사(1763~1764)에 합류했던 500여명의 사내들 이야기를 소설 ‘조선통신사’에 총체적으로 그려낸 김종광. 그는 “왕후장상과 영웅호걸이 나오지 않는 역사소설을 쓰고 싶었다”면서 “지질한 오백 사내를 열심히 사랑했고 내게 가능한 사랑을 다 바쳤다”고 말했다.
다산북스 제공
“청나라 눈치 보고 살기도 힘든데 왜국 놈들까지 날뛰면 어쩌니. 그래서 인삼도 주고 쌀도 주고 대마도 놈들 먹여 살리는 거야. 순망치한(脣亡齒寒) 몰라? 대마도 것들이 망하면 본토 것들이랑 바로 대결이라고. 그것도 모르면서 만날 대마도 것들 욕이나 하냐? 대마도 것들 때문에 우리 조선이 그나마 편하게 사는 거야… 걔들 먹고 살라고 쌀 좀 퍼주는 게 뭐 잘못된 거냐?”

지난 10월 31일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이르렀고 그동안 조선통신사에 관한 책들만 100여종이 넘을 정도로 정보들은 차고 넘치는 편이다. 그럼에도 조선통신사 전모를 아우르는 소설은 없었다. 김종광은 풍부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영웅화할 만한 인물이 없고 여자가 없어 사랑 타령이 어려우며, 당파싸움도 권모술수도 전쟁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는 “바로 그 없음에 매료돼 조선통신사를 쓴 것”이라고 했다.

김종광이 다룬 조선통신사는 1763년 조선이 일본에 11번째 파견한 이른바 ‘계미사행단’이다. 이 사행단에는 최고책임자인 정사 조엄을 비롯해 역관들과 노를 젓는 격군들까지 500여명이 참여했다. 이 사행은 위에서 아래까지 여러 사람들이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들이 보고 기록한 내용과 관점은 각기 상이하다. 김종광은 이들의 기록을 참조하면서 맨 아랫 계급의 종놈 ‘삽사리’와 ‘임취빈’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내 이들로 하여금 작가의 속내를 위트 넘치게 대변하게 만들었다. 날짜별로 전개하면서 사실에 충실하되 다양하게 개입하는 여러 화자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읽힌다.

조선통신사 행렬도.
“후대인들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잘 알고 우러러보지만, 원중거의 ‘승사록’과 ‘화국지’는 잘 모르고 알아도 폄훼하는 경향이 있다. (…) 박지원의 책은 조선보다 앞선다는 선입견이 강했던 중국에 대한 기록이고, 원중거의 책은 오랑캐 금수의 나라로 여겼던 일본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무시당한 바도 크지 않을까?”

이 사행단에 참가해 기록을 남긴 원중거의 저작에 대한 김종광의 시각이 드러난 소설 속 지문이다. 원중거는 잘나가는 벗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풍랑을 만나 몰살당할지도 모를 뱃길에 자원하다시피 했다. 연암 박지원을 넘어서는 기념비적인 문장을 남기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중국에 비해 일본은 오랑캐의 나라일 뿐 조선보다 여러 면에서 열등한 곳이라는 선입견을 지니고 방문했지만, 사실 그들이 조선에 비해 더 잘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을 내비치는 태도가 행간에 자주 보였다. 김종광이 “강호에 머무는 통신사는, 사사건건 무식하고 해괴한 오랑캐놈들이라 깔보려고 애썼다. 한데 어쩐지 오랑캐 놈들의 격물(格物, 사물에 대한 깊은 연구)과 문화가 더 발전되고 볼 만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느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고 소설에 기록한 연유다.

기록에 등재된 인물들의 실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한두 줄짜리 사실을 바탕으로 수많은 인물의 사연과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낸 김종광은 “왕후장상과 영웅호걸이 나오지 않는 홍명희의 ‘임꺽정’ 같은 역사소설을 쓰고 싶었다”면서 “이순신 장군이나 혁명가 정도전이나 기생 황진이 같은 인물들에 비해 조선통신사로 갔던 사내들이 격이 떨어질 수는 있지만, 그래도 그들의 흥미로운 떼거리 여행을 기리는 이 소설은 그들의 삶에 역사성을 부여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작가의 말에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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