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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기름유출 사고 봉사활동이 바꿔놓은 한 여대생의 삶

입력 : 2017-12-06 16:03:59 수정 : 2017-12-06 16: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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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서 태안 아이돌봄 교사로 변신한 김보라씨 "아이들도 꿈 다시 찾기를"
김보라씨. 연합뉴스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 6분. 충남 태안군 만리포해수욕장 앞바다에서 삼성중공업 해상 크레인과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유조선 오일탱크에 구멍이 나면서 1만2천547㎘의 기름이 바다로 쏟아지면서 에메랄드빛 바다가 순식간에 시커먼 기름띠로 뒤덮였다.

아직도 국민 뇌리에 생생한 태안 기름유출 사고가 7일로 10주년을 맞는다.

사고가 나고 자원봉사활동 행렬이 이어질 즈음 대학을 다니던 김보라(여·당시 23세)씨도 여느 젊은이처럼 주말을 이용해 학우들과 함께 기름을 닦아내기 위해 만리포해변을 찾았다.

그곳에서 김씨는 보육원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던 송옥희(여·당시 40세)씨 손에 이끌려 해변 기름 제거 봉사활동을 나온 5명의 보육원생을 운명처럼 만난다.

이후 서너 차례 태안을 찾을 때마다 보육원생들과 친분을 쌓은 김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꽤 괜찮은 기업에 취업했지만, 태안에 있는 송씨와 아이들이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2009년 송씨가 보육원 봉사활동을 정리하고 아예 아이들의 보호자이자 부모 역할을 하는 아동공동생활가정(그룹홈) '희망터전'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보라씨. 연합뉴스
아이가 7명으로 늘어나면서 정부 지원 없이 송씨 혼자 어렵게 아이들을 돌보느라 일손이 턱없이 부족한 것을 알게 된 김씨는 아이들의 교육지원을 해줄 자원봉사자 역할을 하려고 매주 태안을 찾았다.

금요일 저녁이면 태안에 내려와 부족한 일손을 보태고, 토∼일요일엔 아이들과 공부도 하고 체험활동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 뒤 일요일 오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걸 반복했다.

김씨는 "솔직히 몸은 매우 힘들었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보이지 않는 소중한 가치를 발견했고 그들과 함께하는 공간에서 일상의 행복을 경험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대학시절 막연히 다짐했던 '사회에 의미 있는 일 실천'이 태안의 이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결국 김씨는 주변의 만류와 우려를 뒤로 한 채 1년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태안으로 내려왔다.

그는 본격적으로 아이들을 돌보면서 "아이들에게 주는 것보다 제가 더 많은 것을 받아가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회복지사 자격도 취득하고 희망터전의 생활교사로 태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8년이 지난 지금은 태안군 원북면 소재지에서 김씨는 송씨와 함께 나란히 그룹홈을 운영하고 있다.

돌봐야 할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자비를 들여 숙소를 구하고 1층 희망터전(남자 그룹홈)은 송씨가, 2층 봄언덕(여자 그룹홈)은 김씨가 각각 시설장을 하며 어린아이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성장한 14명을 돌보고 있다.

봄언덕은 아직 정부 지원이 안 돼 급여도 없이 시설비와 교육비를 틈틈이 모아놓은 자비를 털거나 지역사회 후원금 등으로 충당해야 한다.

김보라씨. 연합뉴스
그래도 김씨는 시설을 어렵게 운영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그는 "그럴 땐 그냥 그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한다. 거창한 여행이 아니어도 한 때 온통 기름으로 얼룩졌던 마을 앞바다, 수많은 태안의 해수욕장 하나 어딘가에서 그냥 편히 쉬고, 아름다운 해변 길을 걷고 집에 오는 여행을 통해 함께 힘든 시간을 잊으려고 한다. 저와 우리 아이들이 사는 곳에서 반나절 시간만 내면 그걸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 전했다.

김씨는 "제가 좋아서 한 일이지만, 부모님한테는 많이 죄송했다. 내색은 안 하셨지만 실망하셨을 텐데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부모님은 저와 우리 아이들, 우리 시설의 가장 큰 봉사자이자 후원자"라며 "지금은 저보다 아이들의 안부를 먼저 물어주시는 게 한편으론 서운하기도 하지만 아주 많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아동청소년 그룹홈협의회 전사무엘 충남지부장은 "열정과 사랑을 다 바쳐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 아이들의 꿈과 미래를 지원해 주시는 분들"이라며 "3년마다 하는 공동생활가정 평가에서 충남에서 유일하게 그룹홈 평가 100점 만점을 획득할 정도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김보라씨. 연합뉴스
김씨는 "워낙 바쁘고 정신없이 살다 보니 제게 있어 태안에서의 8년은 8주나 8일과도 같은 느낌"이라며 "다만 만리포에서 처음 만난 어린 소녀가 지금은 제 키를 훌쩍 넘어 성인이 돼 함께 배낭을 메고 여행을 갈 수 있는 친구가 된 것으로 태안에서의 시간이 흐른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최근에 식구가 된 막내가 이제 막 걷기 시작한 한 살"이라며 "그 친구가 잘 자라 성인으로 자립할 때까지도 제가 이 일이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둘 수 있는 양심 있는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다"는 말로 자신을 채찍질하곤 한다.

그는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 10주년을 하루 앞둔 이 날 개인적인 바람을 전했다.

"태안 앞바다의 검은 기름때가 걷히고 종적을 감췄던 바닷새들이 돌아온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절망과 상처를 딛고 가려졌던 꿈을 꼭 다시 찾기를 소망한다. 잃어버릴 것만 같았던 바다를 되살린 태안의 기적처럼…"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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