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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의 행복한 세상] 신은 그곳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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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06 08:52:58 수정 : 2017-12-11 18: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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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에 타고르의 산문시 '기탄잘리'를 읽으면 골목 어귀로 들어섰다. 저만치 나무 위에서 새소리가 수선스럽다. 타고르의 음성이 아침 공기를 타고 들려오는 듯했다.

"모든 찬양과 노래와 염주 기도를 내려놓으라! 문 닫힌 사원의 어둡고 적막한 구석에서 그대는 누구를 숭배하고 있는가? 눈을 뜨고 보라, 그대 앞에 신은 있지 않다.
농부가 거친 땅을 일구는 곳, 길 닦는 사람이 돌을 깨는 곳, 그곳에 신은 있다. 신은 태양 아래서도 빗속에서도 그들과 함께 있다. 그의 옷은 흙먼지로 뒤덮여 있다. 그대의 성스러운 옷을 벗고, 신이 그렇게 하듯 흙먼지 이는 땅으로 내려오라!"

시성 타고르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게 바로 이것이 아닐까. 농부의 거친 손에도 신의 은총이 있듯이 온 세상에 신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재잘대는 새소리엔 신의 음성이 있고, 벽을 타고 오르는 빨간 담쟁이에도 신의 의지가 존재한다. 꽃의 안주머니에 농밀한 꿀을 담아놓고 빨간 석류에 진주 알갱이를 가득 채운 이는 과연 누구일까. 신은 이렇듯 모든 것을 주신다. 다만 인간이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뿐.

인간이 신의 은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은 그것을 담을 그릇이 없기 때문이다. 걱정과 번뇌와 욕심과 교만으로 마음이 가득 차 있으니 아무리 준다한들 받을 수 없다. 보아도 볼 수 없고 만져도 느낄 수 없다. 왜 신을 원망하는가. 신에겐 잘못이 없다.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한 오직 그대의 허물만 있을 뿐.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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