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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이것만은 확 바꾸자!] '국가안보'라 쓰고 '방산비리'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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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05 19:40:29 수정 : 2017-12-06 09: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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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 이름 아래 사업추진 ‘장막’… 의혹 끊이지 않아 / 근절 안되는 ‘방위사업 비리’/방사청 11년… 잇단 비리로 ‘몸살’/천문학적 사업비… 추진과정 복잡/관계자 이외 주요 정보 접근못해/해외업체·중개상들 ‘부적절 로비’ /국내업체, 수주 위해 금품·향응 제공
“방위사업 비리는 범죄를 넘어 국가안보의 적이다.”(문재인 대통령)
“방산비리는 안보의 누수를 가져오는 이적행위다.”(박근혜 전 대통령)
“리베이트만 없애도 국방예산 20%를 줄일 수 있다.”(이명박 전 대통령)

대한민국 역대 정부가 발본색원(拔本塞源)을 외쳤으나 방위사업 비리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일단 털고 보자”식의 대응도 한계에 봉착했다. 비리 혐의로 기소된 예비역 장성과 무기중개상이 재판에서 잇달아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부실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방위산업계가 비리 집단으로 낙인찍히면서 대기업들이 방위산업계를 떠나는 등 부작용도 속출했다.

◆근절되지 않는 방위사업 비리

방위사업 비리를 근절하고 방위산업 경쟁력을 육성하기 위해 2006년 방위사업청(방사청)이 창설됐다. 방사청 출범 11년이 지나도록 방위사업을 둘러싼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는 것은 분야 특유의 폐쇄성 탓이 거론된다. 사업 관계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사업 관련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무기 구매 과정을 다루는 사람은 극소수인데 사업비는 수조원, 무기 유지관리비는 사업비의 수십배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가 크다. 사업추진과정도 복잡하다. 국가안보라는 이름 아래 주요 정보와 사업추진과정이 비밀의 장막 아래 가려져 있다 보니 오히려 정보유출이나 시험성적서 변조 등의 비리 발생 가능성이 존재한다.
외국에서 무기를 수입하는 해외 도입 사업과 국내에서 납품하는 국내 연구개발 사업 모두 비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해외 업체는 국내 업체와 달리 원가와 계약 등에서 정부 검증을 받지 않는다. 효과적인 정부 검증이 어려우니 비리의 사전 적발도 쉽지 않다. 해외 업체는 국내 업체보다 인적 네트워크도 부족하다. 핵심 정보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은 해외 업체와 해외 업체를 대리하는 국내 무기중개상(에이전트)의 부적절한 시도를 부추기는 구조다.

국내 업체도 국내에서 유일한 무기 구매 고객인 군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금품·향응을 제공해 정보를 얻거나 사업을 수주하려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는 영국 BAE시스템스를 대리하는 국내 무기중개상 업체에 군사 3급 비밀인 합동무기체계목록서를 유출한 혐의 등으로 방사청 직원 이모(당시 6급)씨를 구속기소 했다. 이씨는 2015년 12월에서 지난해 1월 문건을 빼돌려 스캔 파일로 전환해 휴대용저장장치(USB)에 담아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4년 6월 수원지검 안산지청은 방산업체에서 뇌물 2억여원을 받고 입찰정보 등을 제공한 혐의로 전직 방사청 소속 육군 대위 윤모(42)씨를 구속기소 했다. 윤씨는 2009년 국내 방산업체 대표에게 탄약보관통 사업 입찰정보를 제공하고, 자격이 없는 해당 업체가 입찰에서 1순위가 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았다.
◆무리한 수사는 방위사업 전체 위기 불러

끊이지 않는 방위사업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박근혜정부는 2014년 11월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을 출범시켰다. 수사단은 1년 동안 수사를 벌여 74명을 재판에 넘겼고 이 중 51명을 구속기소 했다. 
방위산업 비리를 전담하는 범정부 협업조직인 방산비리특별감사단 현판식이 지난 2014년 11월 24일 오전 감사원 제1별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 최종 결과는 미미했다. 기소된 피의자들이 무죄판결을 받으면서 방위산업계에 피해만 입히고 무리한 수사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황기철(60) 전 해군참모총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황 전 총장은 미국 업체가 해군 수상구조함 통영함(3500t급)에 납품한 수중음파탐지기(HMS)가 해군 요구성능(ROC) 기준에 미달한 것과 관련한 비리 혐의로 구속기소 됐으나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방산업체인 일광공영 이규태(68) 회장도 군 납품 비리 혐의에 대해 1·2심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EWTS) 사업 과정에서 제작사인 터키 업체와 방위사업청의 거래를 중개하면서 200억원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었다. 아들을 통해 무기중개상으로부터 2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최윤희(64) 전 합참의장도 지난 8월 열린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수사 과정에서 혐의와는 무관하게 비리 집단으로 몰렸던 국내 방산업계는 주요 대기업이 방위산업을 포기하면서 뿌리째 흔들렸다. 삼성은 2015년 7월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과 삼성탈레스(한화시스템)를, 두산은 지난해 5월 두산DST(한화디펜스)를 한화에 매각하며 방위산업에서 철수했다. 한 방산업체 관계자는 “(비리 논란으로) 방위산업이 그룹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친 데 따른 것”이라고 평가했다.

주무부처인 방사청은 이중삼중의 감시를 받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방사청 직원은 “1년 중 절반 이상을 감사 관련 업무에 소모하는 상황에서 전력증강 업무가 제때 돌아가겠는가”라고 토로했다. 방사청은 지난해 초 조상준 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이 방위사업감독관으로 부임해 사업 추진 전반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감사원·국군기무사령부 등 외부 사정기관도 방사청의 전력증강 업무 과정에서 비리나 군사기밀 유출 여부 등을 조사한다.

◆준법성·투명성·전문성 강화 등 근본 대책 절실

군 안팎에서는 무기도입 사업의 법·행정 절차 준수를 통한 투명성 강화와 전문성 제고 등 근본 대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방사청은 지난달 30일 ‘2017 방위사업 반부패(준법지원) 국제 콘퍼런스’를 열고 방위사업 청렴 생태계 구축을 위한 내부 통제시스템 구축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무기도입절차를 규정한 방위사업법에 따르면 △국방부는 군사력 건설에 필요한 국방중기계획을 작성하고, △합동참모본부는 무기 소요 결정과 시험평가를 △방사청은 사업 집행을 담당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방기술품질원 등 군 전문기관이 검증을 한다.

문제는 북한이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도발 변수가 돌출했을 때다. 북한의 새로운 위협에 시급히 대응해야 하는 절박함에 사로잡힌 군은 기존 계획에 없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린 무기도입사업을 조기 전력화 대상으로 분류해 급박하게 사업을 추진한다.

이런 형태의 무기도입 사업은 무기중개상이나 외국 방산업체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군 당국이 조건과 성능을 제대로 따질 여유가 없는 탓이다. 통영함 비리도 2010년 천안함 사건이 터지자 급하게 사업이 추진되면서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않고 성능이 떨어지는 수중음파탐지기를 비싼 가격에 산 것이 원인이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7 방위사업 반부패(준법지원) 국제 콘퍼런스’에서 전제국 방위사업청장(앞줄 왼쪽 다섯번째),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 여섯번째)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국민권익위 제공

방사청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방사청은 사업관리본부 내 통합프로젝트관리팀(IPT)에서 사업과 기술 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방사청의 민간공무원이나 현역 군인이 각 팀에서 요구하는 전공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업 추진을 지연시키고 방산업체의 부적절한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원인이라는 평가다.

김대영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박근혜정부의 방위사업 비리 대책은 시스템 개선보다는 망신주기식에 가까운 미봉책에 그쳐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또 “무기도입 사업 추진과정에 10년이 소요되는 현 시스템은 문제가 있다”며 “사업 관리를 육·해·공군에 넘기고 방사청은 계약관리에만 전념토록 해 사업 진행을 가속하고 전문성을 보완하는 등의 획득 시스템 개선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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