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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얼마 전 아파트 봉사단체의 김장 나눔 행사를 다녀왔다. 주부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재료를 구입해 김치 수백 포기를 담가 독거 노인들에게 배달했다고 한다. 주부 20년차를 넘기고도 매년 김장은 친정에서 공수해오는 터라 “그 김치 누가 먹겠느냐?”고 농을 건네자 “노동력만 보탰다”고 응수했다. 온몸이 쑤신다면서도 마음은 푸근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김장철이다. 김장은 과거에는 대체로 절기상 소설(小雪) 이후에 시작해 12월 초에 마무리됐다. 요즘은 저장 기술이 좋아지고 채소 재배 기간이 길어지면서 차츰 늦춰지고 있다고 한다. 김장은 엄동철 먹을거리 저장방법을 넘어 우리 고유의 나눔문화다. 2013년 유네스코가 김장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때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making and sharing Kimchi) 문화’로 정의했다. 매년 이 맘때 불우한 이웃을 위해 김장을 나누는 행사가 많은 것도 김장에 담긴 정(情)문화 때문일 것이다.

김장철에는 기업 기부가 봇물을 이룬다. 김장 나눔을 제일 먼저 시작한 기업은 SK그룹이다. 1996년부터 1000여 명의 직원이 서울 올림픽공원 체육관에 모여 김장을 했다고 한다. 당시는 연탄 봉사가 대세였던 터라 김장 봉사는 생소한 시절이었다. 2000년대 들어 요구르트가 김장 봉사에 뛰어들면서 붐이 일었다. 부산의 한 요구르트 아줌마의 김장 나눔 선행이 알려지면서 전국 지사로 확대한 것이다. 2013년 겨울에는 서울광장에서 2000여 명이 함께 250t의 김치를 만드는 장관을 연출했다. ‘서울광장을 빨간 김치 빛깔로 물들인’ 이 행사는 월드 기네스에 올랐다. 그 후 다른 기업도 앞다퉈 벤치마킹하면서 겨울철 대표적 기부행사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기업들의 김장 나눔 행사가 많아졌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한 세대 전까지는 집집이 김장을 담갔다. 손이 많이 가는 김장을 같이하며 이웃 간 정을 나눴다. 그렇지만, 요즘은 사 먹는 가정이 압도적이다. 시간이 없는 데다 담그는 법을 모르는 것도 주된 이유다. 머잖아 아이들은 김장을 집에서 담그는 게 아니라 기업의 불우이웃 돕기 이벤트 정도로 여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박태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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