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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환란 20년… 소멸된 역동성 되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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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03 23:40:58 수정 : 2017-12-03 23:4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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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20년 지나도 청년실업 여전
역동성 살리려면 일자리 창출뿐
일자리 위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공시촌보다 벤처밸리 뜨도록 해야
1997년 12월 3일. 임창열 부총리 겸 재경원장관과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는 ‘국제통화기금(IMF) 자금지원 합의서’에 사인했다. 옆자리에 앉은 미셸 캉드쉬 IMF 총재는 엷은 미소를 머금고 지켜봤다.

그 서명 이후 필자를 비롯한 당시 대학 재학생들은 IMF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다. 대학을 떠나면 시베리아 벌판이었다. 기업들이 입사원서를 들고 대학을 찾아와 구인 경쟁에 나서던 풍경은 사라졌다. 어학연수와 토익으로 쌓은 스펙은 모래성이 됐다. 천신만고 끝에 합격 통보를 받은 뒤 하루 만에 취소 통보를 받는 황당한 일도 수두룩했다.

이천종 경제부 차장
1991~1994년 대학에 입학한 우리를 언론에서는 ‘저주받은 학번’이라 불렀다. 몇 년 뒤 경기가 살아나면서 취업 숨통이 트였기 때문에 우리 세대의 불행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런데 오판이었다.

외환위기 발생 20년이 흐른 지금, 치솟는 청년실업률을 보고 있노라면 후배들의 현실이 더 참혹해 보인다.

통계청의 ‘10월 고용동향’을 보면 청년층 실업률은 8.6%로 1년 전보다 0.1%포인트 올라갔다. 10월 기준으로 1999년 이후 18년 만에 가장 높은 것이다. 청년 체감실업률인 고용보조지표 3은 21.7%로, 1년 전보다 0.6%포인트 상승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최악이다.

IMF 학번만 해도 고용절벽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짧은 백수 생활 끝에 정규직에 속속 안착했다. 후배들은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가까스로 터널을 지나도 비정규직이 기다린다. 20년 전 ‘IMF 1차 의향서’에 담긴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조치’라는 한 줄 합의 문구가 몰고온 폭력이다.

출발선에서 부닥친 거대한 벽의 공포를 먼저 겪은 세대로서 후배들이 안쓰럽고, 그런 현실을 고치지 못한 기성세대로서 미안하다.

7년째 청년층 직업 선호도 1위인 공무원 시험에 청년들이 몰리는 것은 합리적인 자연선택인 셈이다. 역동성이 사라진 한국 경제 생태계의 민낯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경제 역동성을 되살리려면 결국 일자리 창출이 해법이다.

일자리를 늘리려면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노량진 공시촌보다는 판교 벤처밸리가 뜨도록 하는 게 맞다.

통계적으로도 자동화와 국내생산 감소 등으로 대기업의 일자리 늘리기는 점점 한계에 직면하고 있고, 벤처기업을 포함한 중소기업의 일자리는 늘고 있다.

스타트업이 키를 쥐고 있는데 아직 우리 현실은 초라하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벤처투자 규모는 창업 선진국인 이스라엘의 5분의 1 정도다. 초기 투자자(엔젤)의 경우에는 미국의 0.5% 수준에 불과하다. 벤처기업 신규자금 조달 방법 중 정부 정책 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웃돈다. 그러다보니 사업보다는 정부 지원사업 서류를 만드느라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스타트업이 적잖다.

제대로 된 스타트업 육성의 관건은 규제 개혁에 달렸다.

아산나눔재단과 구글캠퍼스 서울의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를 보자. 최근 1년간 누적 투자액 상위 100개 스타트업의 사업 모델을 국내에 적용할 경우, 약 70%에 이르는 스타트업이 규제에 막혀 정상적인 사업을 펼칠 수 없거나 조건부로만 가능했다. 우버나 에어비앤비 등 세계적인 스타트업도 국내에서는 규제에 막혀 사업 모델을 유지할 수 없다는 얘기다.

왜 그럴까. 한국개발연구원(KDI) 규제연구센터의 조사 결과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센터가 경제전문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저조한 규제개혁 성과의 근본원인으로 △규제개혁 정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24.7%) △정부의 규제개혁 추진의지 부족(21.0%) △정치권의 규제개혁 추진의지 부족(19.4%) 등의 답변이 나왔다.

설문대로 ‘인식과 의지’의 부족 문제라면 창업생태계를 되살리는 길이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서둘러 인식을 바꾸고 의지를 벼리면 되는 일 아닌가. 그러나 이것도 오판일 수 있겠다. 정치권은 지금도 혁신성장 예산안 등이 담긴 내년 예산안의 법정 처리 시한을 넘기는 구태를 재연하며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지 않는가.

이천종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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