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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지옥 결혼' 끝내고 싶지만… 이혼보복에 떠는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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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03 19:29:41 수정 : 2017-12-04 17: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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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방지법 제정 20년… 여전한 사각지대 / 학대 사유 年 이혼신청 4400여건 / 자녀 볼모잡혀 참는 경우도 많아 / 가해자 접근금지 사전신청해도 법원 결정나기까지 무방비 상태 / 조사 중 가해자와 대면 경우 빈번 / “이혼 과정 피해자 보호 제도 없어”
가정폭력 피해자 김정미(가명)씨에게 2015년은 지옥 같은 1년이었다. 이혼에 ‘성공’하기까지 남편의 무자비한 협박과 폭행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김씨는 결혼 직후부터 수년간 이어진 남편의 폭력에 고통받다 가까스로 남편의 동의를 얻어 협의이혼을 신청했다. 하지만 남편은 이혼 의사를 확인하러 출석한 법원에서 되레 “이혼하고 법원에서 나가자마자 널 인신매매단에 팔아넘길 것”이라고 협박했다. 남편은 이후에도 수시로 김씨를 찾아와 흉기로 위협했다. 이혼이 마무리되던 날, 김씨는 남편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가정폭력 때문에 이혼을 결심한 여성들이 이혼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남편의 보복에 노출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달 25일 남편이 이혼 조정 중이던 아내를 찾아가 흉기로 살해한 일을 예외적인 사건으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시킬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허점이 많아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3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배우자의 정신적·육체적 학대를 이유로 이혼을 신청한 건수는 한 해 평균 4400여 건으로, 성격차이(2016년 4만8560건)나 경제문제(〃 1만928건), 가족 간 불화(〃 7927건) 등에 비해 현저히 적다.

하지만 이 같은 수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대다수 가정폭력 피해자는 자녀나 친정 식구의 신변을 ‘볼모’로 잡혀있어 이혼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즉 통계치는 가정폭력을 참다 못해 이혼을 신청한 경우라는 얘기다. 실제 가정폭력 피해자 A씨는 “이대로 살다간 내가 남편을 죽일 것만 같아 이혼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피해자를 가해자와 떼어 놓는 방법은 있다. 경찰관이 현장에서 가해자, 피해자를 분리하는 응급조치와 직권으로 행사할 수 있는 긴급 임시조치, 검사가 청구하는 임시조치가 법률상 가능하다.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접근금지를 청구할 수 있는 피해자보호명령제도 있다. 

하지만 각 제도마다 허점이 분명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응급조치는 피해자가 보호시설 인도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분리할 방법이 없고, 임시조치 또한 법원 결정까지 최소 7일 이상이 소요돼 가해자의 보복에 일정 기간 노출될 수밖에 없다. 피해자 보호명령제의 경우 지난해 1466건이 접수됐지만 기각 및 취하 등으로 실제로 보호명령 결정이 난 것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639건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이혼 과정 중 피해자를 가해자의 위협에서 완전히 보호할 수 있는 제도나 정책은 사실상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현곤 변호사는 “가사소송법에도 접근금지 사전처분이 규정돼 있지만,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피해자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고, 가해자의 이전 폭력 증거를 피해자가 제시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며 “이마저도 협의이혼에서는 법원이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관계기관의 인식 부족도 큰 문제다. 가정폭력 피해자 B(60·여)씨는 지난해 이혼소송 과정에서 법원 가사조사관에게서 “지금까지 참고 살았는데 그냥 참고 살라”, “(칼로 위협받았다는 말에는) 죽지는 않지 않았느냐”는 말을 들었다. 

최근에는 가정폭력 피해자 권리 보장을 명시한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이혼과정 중인 피해자의 신변보호를 위한 부부상담, 자녀면접교섭권 제한 등의 내용은 빠져있어 ‘반쪽짜리’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서재인 한국여성의전화 부설 쉼터 시설장은 “가정폭력처벌 및 방지법을 제정한 지 20년이 다 됐지만 아직도 이혼소송에서 가정폭력의 위험성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혼을 결심한 피해여성들이 가해자의 강도높은 협박과 폭력을 감수하는 실정을 감안한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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