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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라벨 피아노 협주곡 1악장과 2악장 사이 10∼20초의 휴식이 끝나가고 있었다. 콜록 콜록, 부스럭대며 관객이 숨 돌리는 사이,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건반에 정신을 집중했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하는 중요 무대다. 특히 2악장 시작부는 관객 2000여명과 오케스트라를 등지고 피아노 홀로 한 음 한 음 짚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조성진이 손을 올리려는 순간, 1층 객석 뒤쪽에서 별안간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휴대전화 벨인가 싶던 소리는 놀랍게도 방금 연주된 1악장 선율이었다. 불청객 같은 멜로디는 한참이 지나도 그치지 않았다. 객석이 조용해지고 나서야 다시 정신을 가다듬은 조성진은 ‘아름다워서 눈물 난다’는 표현이 체감될 만큼 훌륭히 2악장을 연주해냈다. 하지만 이날 조성진과 베를린 필의 협연은 대단했던 연주만큼이나 눈살 찌푸려지는 관람 예절로도 길게 회자됐다.

이 ‘멜로디 테러’는 연주를 몰래 녹음한 관객이 실수 혹은 다른 이유로 재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주 방해’에 ‘밀녹’ 혐의가 전해지자 짜증과 창피함이 섞인 네티즌의 분노는 한층 가열됐다.

이날 일부의 ‘안다 박수’도 공분을 불렀다. ‘안다 박수’는 ‘나는 이 곡의 끝을 안다’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곡이 어디서 끝나는지 아는 것만도 ‘교양’이었던 과거에, 과시욕으로 우렁차게 손뼉치던 이들을 비꼬느라 나온 표현인 듯하다. 

송은아 문화부 기자
베를린 필 공연에서는 1부 ‘돈 주앙’과 라벨 협주곡, 조성진의 앙코르 곡인 드뷔시 ‘물의 반영’이 끝날 때마다 번번이 ‘안다 박수’가 터졌다. 지휘자가 팔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1층 왼쪽 뒤편에서 몇 초 빠르게 ‘짝짝짝’ 소리가 울렸다. 덕분에 소수의 ‘안다 박수’와 나머지 관객의 우레 같은 박수가 시간 차를 두고 들리는 일이 반복됐다. 당시 이들이 왜 ‘안다 박수’를 쳤는지는 모른다. 그저 남보다 빠른 행동 리듬을 타고 났을 수도 있다. 곡의 끝을 아는 일이 전혀 대단할 게 없는 시대 아닌가. 그러나 이들의 박수 소리는 고요 속에 여운을 음미하려던 대다수 관객의 얼굴을 찌푸리게 했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관람 방해, 시쳇말로 ‘관크’(관객 크리티컬의 줄임말)는 하루이틀 된 일이 아니다. 2011년 3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서는 브루크너 교향곡 8번 아다지오 연주 중 장장 40초 가까이 벨소리가 울렸다. 2013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말러 교향곡 9번 연주와 이듬해 말러 5번 연주 역시 실황녹음이 동시 진행되는 중에 벨소리가 울려 최악의 ‘관크’로 회자된다.

클래식 공연장의 관람 예절은 초심자에게는 가혹하게 느껴질 만큼 까다롭다. 다운 패딩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거슬리고, 기침도 되도록 삼가야 하고, 안내 책자도 조용조용 넘겨야 한다. 연주가 대단할수록 관객도 집중하다보니, 이에 비례해서 작은 소음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어떤 면으로는 인간 본성을 억누른다 싶다. 하지만 이날 주변에서 여러 번의 습관성 기침, 두어 번의 하품 소리가 잇따르자 의문이 들었다. ‘왜 저들은 참아도 될 법한 기침을 당당히 하나.’ 그러고 나니 소음 자체보다, 배려가 실종된 태도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클래식 공연장에서는 침묵도 음악이다. 공연을 보는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가 정착되면 ‘관크 참사’가 되풀이되는 일은 줄지 않을까.

송은아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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