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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낳을 뿐
넓은 가슴으로 끌어안아야
아무리 명분이 거창할지라도
사람 해치는 정치는 옳지 않아
원수를 없애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원수를 죽여 없애는 살인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에서 지워 없애는 포용이다. 살인이 독재자가 주로 쓰는 하지하책(下之下策)이라면 포용은 위대한 인물이 사용하는 상지상책(上之上策)이다. 하책은 증오와 분열을 부르지만 상책은 국민통합과 태평성세로 국가를 인도한다.

생각해 보라. 권력자가 반대자들을 모조리 숙청한다면 내부의 불만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을까. 당장은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긴 시간을 두고 보면 원수는 절대 소멸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원수를 처단하면 그의 가족과 친지들은 가해자에게 엄청난 적개심을 갖게 된다. 가슴 한구석에 뿌리 내린 ‘칡과 등나무’는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온천지를 갈등(葛藤)으로 뒤덮을 것이다. 사색당파로 찌든 조선에서 증오와 대립이 문중을 통해 대물림된 것도 원수를 원수로 갚은 악순환의 결과였다. 그것이 망국의 참상을 부른 병폐의 근원이다.

배연국 논설실장
포용은 다르다. 마음에서 원수를 지워버렸으니 증오와 적개심이 생겨날 턱이 없다. 위대한 지도자들이 위대해질 수 있었던 것은 포용의 덕목을 행동으로 실천한 까닭이다. 세종대왕은 자신의 왕위 계승에 반대한 황희를 영의정에 세웠고, 당 태종은 자기를 죽이려 했던 위징을 요직에 발탁했다. 훗날 세종은 한국 최고의 성군이 되었고 태종은 가장 모범적인 통치철학을 중국 역사에 남겼다. 27년간 감옥에 갇힌 넬슨 만델라는 과거 자신을 괴롭혔던 교도관 세 명을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했다. 만델라가 원수를 끌어안은 것은 자신이 꿈꾸는 나라는 증오로는 결코 만들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역시 관용의 비책을 애용한 대정치가였다. 그는 비범한 포용 전략으로 원수들을 일거에 쓸어버렸다. 그에게는 에드윈 스탠턴이라는 정적이 있었다. 대중 앞에서 링컨을 고릴라라고 놀려대던 작자였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링컨이 대통령이 된 것은 국가적 재난”이라고 비난했다. 링컨은 그런 인물을 내각의 요직인 국방장관에 앉혔다. 참모들이 “원수를 없애야 하지 않느냐”고 반발하자 링컨은 “옳은 말이야. 원수는 마음에서 없애 버려야지”라고 응수했다.

링컨이 남북전쟁이라는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한 것은 이처럼 넓은 가슴을 지닌 덕분이었다. 만약 전쟁에서 승리한 링컨이 패배한 남군을 단죄하려고 칼을 뽑았다면 미국은 회복 불가능한 분열 사태로 치달았을 것이다. 그는 국민통합이라는 더 큰 목표를 위해 남군의 반역과 악행을 가슴에 묻었다. 링컨이 미국 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링컨처럼 통합을 외쳤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이 선 곳은 이념과 정쟁으로 얼룩진 ‘분열의 광장’이다. 광장은 촛불과 태극기로 쪼개지고 서로를 향한 적개심으로 이글거리고 있다. 적폐청산의 칼바람 속에 쇠고랑을 차거나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속출한다. 물론 과거의 잘못을 고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면 얼마간의 희생과 소란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 사실을 백번 인정하더라도 사람이 상하고 증오가 번뜩이는 현실은 정상으로 보기 어렵다. 과유불급이다!

옛날 노나라의 실력자인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만약 도가 없는 사람들을 죽여서 도를 성취한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답했다. “정치를 하면서 사람 죽이는 방법을 써서야 되겠습니까? 당신이 선하고자 하면 백성은 선해질 것입니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입니다. 풀은 바람이 불면 반드시 눕습니다.” 위정자들이 착한 정치를 베풀면 백성들이 착해질 것이니 굳이 나쁜 백성을 죽이는 하책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사람은 어떤 가치보다 우선한다. 거창한 명분이나 이념도 사람을 앞설 수는 없다. 그것이 문재인정부가 추구하는 ‘사람 중심’이 아니겠는가. 사람의 가치를 높이고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정치의 지향점이 돼야 한다. 정치의 정도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일이다.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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