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필자가 대학시절 기생충학 강의를 들을 때였다. 학교도서관에서 원서를 읽다가 ‘기생충을 연구하려거든 한국으로 가라’는 글을 읽고, 나도 모르게 빨간 연필로 밑줄을 그은 생각이 난다. 당시 우리나라는 ‘기생충 왕국’이라 할 정도로 한 사람이 회충·십이지장충·편충·요충 등 여러 가지 기생충에 감염되기 일쑤였다. 게다가 구충제도 없던 시절이어서 나의 어머니는 심지어 뱃속 회충을 죽이겠다고 휘발유를 마시기도 했다.
회충은 선형동물로 ‘거위’ 또는 ‘거시’라고도 부르는데, 지렁이를 닮았고 큰 것은 30cm에 달한다. 회충은 한살이(일생)가 매우 복잡다단하다. 회충 알이 든 인분을 채소밭에 뿌리면 회충 알이 푸성귀에 묻어 입으로 들어가 위에서 알을 까고, 깬 애벌레(유충)는 소장 벽을 뚫고 들어가 소장에 정착한다.
회충은 자웅이체(암수 딴몸)로 암컷이 수컷보다 조금 더 길고, 수놈 꼬리 끄트머리엔 뾰족한 뜨개질바늘코를 닮은 교미침(交尾針)이 있다. 때때로 짝짓기를 하느라 한 곳으로 모여 얽히고설켜 커다란 덩어리를 이루는데, 이로 말미암아 배가 아픈 횟배앓이(거위배)는 흔한 질병이었다. 그런데 요즘 와선 기생충을 배에 키워 체중을 빼려는 사람도 있다 하니 참으로 세상이 희한하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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