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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활용할 생각 버리라면서 / 적폐수사 독려하는 문 대통령 / MB 응징 매달려 실기 말아야 / 정치 중립 위한 인사 독립 관건 포항지진이 난 지 보름째. 이재민은 망가진 일상과 여진의 공포에 신음하고 있다. 공교롭게 ‘지진의 나라’ 일본을 얼마 전 다녀왔다.

도쿄 고찰인 아사쿠사 센소지. 100엔을 내고 운세를 점치는 사람이 북적거렸다. 흉(凶)이 적힌 종이를 뽑으면 나무에 매달고 갔다. 흉만 빼곡했다. 길(吉)을 바라는 마음이 눈에 보였다. 도심엔 건물마다 빨간색 삼각형이 붙여진 유리창이 있었다. 재난구조를 위한 소방관 출입구다.

불법 주차가 없다는 나라라고 해서 숙소 주변 주택가를 사흘간 1시간씩 돌아봤다. 반칙은 없었다. 소방차가 못 다니는 골목은 상상이 안 된다. 일본은 ‘차고지증명서’가 없으면 차를 못 산다. 또 법을 지켜야 모두가 안전하다는 의식이 남다르다. 포항에서 규정을 어긴 불량 건물은 지진 피해가 컸다. 국정도 그렇다.

검찰의 고강도 수사가 장기화하고 있다. 불법의 뿌리가 깊은 탓이다. 죄가 있으면 전직 대통령이라도 털어야 한다. 다만 준법보다 ‘적폐청산’, ‘정치보복’ 소리로 떠들썩하니 우려스러울 뿐이다.

2008년 이명박(MB)정부 초기 류우익 대통령실장은 일부 기자와 만나 “새 정부는 사정을 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쳤다. 그해 6월 잘렸으니, 한 치 앞을 몰랐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은 위기를 불렀고 사정은 불가피했다. ‘박연차 게이트’ 검찰 수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 비극이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취임 후 첫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사정의 속도조절을 주문했다. 당시 민정수석이 지금 대통령인데 사정 논란이 요란하다. 지난 6일 자살한 변창훈 검사의 부인은 14일 언론 인터뷰에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원망을 쏟아냈다. 검찰이 압수수색 준칙을 어기고 이른 아침 들이닥친 게 가족에게 큰 상처가 됐다고 했다. 이 내용 보도 후 조은석 서울고검장은 대책 논의차 지검장들을 소집했다고 한다. 윤 지검장은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질주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딜레마에 빠졌다. 검찰 개혁과 MB 응징이란 두 가지 사명이 충돌해서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정부때 검찰 개혁을 못한 게 “한으로 남았다”며 수차 후회했다. 검찰 개혁 실패가 주군 불행과 연결됐다고 보기에 의지는 확고하다. 문제는 MB 잡기에 매달리다 실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적폐 1순위 검찰이 개혁의 선봉으로 둔갑하고 있다. 적폐수사 효과다. 여권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서두르는 배경이다. 검찰 권한을 견제하고 분산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허범구 논설위원
관건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검찰의 과도한 권력과 정치적 편향은 동전의 양면이다. 역대 대통령은 청와대 민정수석, 법무장관을 통해 검찰 인사를 쥐락펴락했다. 검찰을 이용해 ‘하명(下命)수사’ 효용을 누리다 초심을 잃었다. 죽은 권력을 단죄하는 검찰공화국의 근원은 인사권에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검찰 스스로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과 맞서는 용기를 내야 한다. 무더기 하명수사 문제부터 제기해야 한다. 서울중앙지검이 진행 중인 적폐청산 수사만 16건이다. 김관진 전 국방장관 등의 석방은 부실수사 때문이다. 그런데도 모두 침묵이다. 한 고참 차장 검사는 “노무현정부 때 밉보여 좌천된 검사들이 많다. 트라우마가 커서…”라고 했다. 인사권 독립이 없으면 정치 중립도 없다.

문 대통령은 공저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검찰은 정권 목적에 의해 사용되는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문 총장 임명장 수여식에선 “정치도 검찰을 활용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상반된다는 지적이다.

중용 23장은 정조를 그린 영화 ‘역린’의 명대사다.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 번도 경험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검찰의 정치 중립성 보장이 그 첫걸음이다. 인사권을 놓아야 가능하다. 그게 정성을 다하는 길이다.

허범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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