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군사정변을 기획·감독했던 김종필 전 총리는 권력의 단맛과 쓴맛을 맛본 뒤 이렇게 평가했다. “정치는 허업(虛業)이여.” 대선 삼수 실패자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정치는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고 평했다. 김대중정부 때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야당을 이끌며 완력을 과시했던 그도 정계입문을 후회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친박 핵심’, ‘친박 좌장’으로 위세를 떨치던 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당 대표로부터 바퀴벌레라고 비난받는 등 친박청산 1순위에 올랐다. 박근혜 정권의 아이콘이자 나는 새도 떨어뜨릴 것만 같았던 ‘실세 부총리’ 최경환 의원도 통탄하고 있을 것이다. 보좌진의 채용 외압으로 곤욕을 치르다가 국정원 특활비 수수의혹으로 궁지에 몰려 있다. “억울하다”는 호소 편지를 날렸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어제 재판에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배신으로 돌아왔고 모든 명예와 삶을 잃었다”고 한 심경 표현이 거짓일 리 없을 것이다. 명사들을 몰고 다니며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를 독려하던 때가 불과 1∼2년 전이었는데 말이다.
위정자들이 그들이 몸담았던 정치를 떠올릴 때마다 진저리치고 손사래를 치는 것은 토양 때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권력에 고여 있는 단맛과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배신과 보복의 유산 때문이리라. SNS에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비아냥이 넘친다. 하지만 더 굴욕당하고 깨져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훈수도 넘쳐난다.
한용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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