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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투명인간 동물농장 그리고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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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27 23:35:16 수정 : 2017-11-27 23:3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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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붙인 8급비서 증원 / 책임감 결여가 빚은 오만 / 권력 제대로 사용 않으면 / 여의도 정치 새드엔딩 될 것 8급 비서 300명을 새로 늘리는 법안을 뚝딱 해치운 국회의원들을 보고 투명인간과 동물농장 생각이 났다.

지금까지 사람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투명인간은 악인이다. 플라톤의 ‘반지의 전설’에 따르면 순박한 목동 기게스는 투명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반지를 얻고 나서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소설 ‘투명인간’에서 눈과 귀만 남기고 얼굴 전체를 붕대로 감고 다니는 투명인간 그리핀은 화학실험 끝에 바라던 투명인간이 된 뒤 극단의 욕망에 사로잡혀 타락의 길을 걷는다. 영화 ‘할로우맨’에서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스스로 투명인간이 된 카인은 욕망과 과대망상을 분출하는 광인으로 변한다. 이들이 투명인간이 되고 나서 욕심을 부리게 된 것은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므로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배지도 신통술을 부리는 마법의 배지임이 틀림없다. 배지를 달고 나면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는 몰염치한 행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책임감이 마비된 나머지 국민이 쥐어준 권력을 믿고 투명인간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본래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먼저 돌아볼 줄 아는 평범한 시민이었던 모양이다. 새누리당에서 바른정당으로,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간 김무성 의원은 새누리당 대표 시절 대학생들에게 “(국회의원들은) 다 존경받는 훌륭한 사람들인데 국회의원 배지만 달면 다 개판 수준으로 바뀐다”고 폭로한 적이 있다.

조지 오웰의 풍자소설 ‘동물농장’에서 인간들을 몰아내고 농장을 장악한 수퇘지들은 동물농장 7계명을 내건다. “어떤 동물도 인간의 침대에서 잠을 자서는 안 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등등. 그러나 이 계명들은 독재자에 의해 “어떤 동물도 ‘이불을 덮고’ 인간의 침대에서 잠을 자서는 안 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로 수정된다.

국회의원은 임기를 시작하며 의원선서를 한다. “…국가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그러나 의정생활 요령을 터득할 때쯤이면 그들이 가슴속에 품고 다니는 의원선서문은 “…국가의 이익 ‘또는 국회의원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로 고쳐져 있다. 그래서 국민세금이 67억원이나 쓰이는 공무원 300명을 국민 허락도 받지 않고 멋대로 늘리면서 “어차피 여론이라는 것은 며칠 지나면 없어진다” “국민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자”는 따위의 소리도 감히 할 수 있는 것이다.

김기홍 논설위원
우리나라 국회는 개혁 대상 0순위다. 가성비가 형편없는 고비용 저효율의 상징이다. 의원 300명이면 300 이상의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300에 훨씬 못미친다. 의원 숫자를 줄여도 시원치 않을 판에 늘리지 못해 안달이다. 자신들의 세비와 각종 수당을 밀실에서 몰래 인상하곤 한다. 의원회관 넓히고 외국 돌아다닐 핑계를 만드는 데 귀신이다. 200개나 되는 특권 가운데 몇개만 내려놓으라는데도 시늉만 낼 뿐 혁신과는 담 쌓고 산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활동은 큰 감동을 줬다. 시민참여단 471명이 보여준 열정과 책임감을 본 뒤 숙의민주주의에 눈을 떴고 대의민주주의에 회의를 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여의도 정치와 오버랩되면서 “국회의원들도 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쏟아지고, “국회, 이대로 좋은가”라는 물음이 꼬리를 문다. 대의민주주의는 가장 실천가능한 민주주의로 인정받지만 국민 의사를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민이 뽑은 대표는 반드시 국민의 뜻에 따라 정치행위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필요할 때만 ‘국민의 뜻’을 팔기도 한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안으로 국민참여 확대와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국회의사당 기둥 밑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투명인간, 동물농장 이야기는 새드엔딩이다. 국회가 국민이 빌려준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여의도 의사당 이야기도 새드엔딩이 될 수 있다.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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