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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주칼럼] 가상화폐, 투자의 대상일까 화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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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26 21:11:00 수정 : 2017-11-26 21: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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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대상으로 자리한 가상화폐
이제 화폐 영역으로 들어가려면
국경 넘는 공동화폐 존재에 대한
국제적 논의·합의의 과제 풀어야
인류가 만들어낸 위대한 발명품 리스트를 만들면 아마도 화폐가 최상위에 나오지 않을까. 고대 교역의 중심이었던 바빌로니아나 페르시아의 상인들은 물물교환을 솜씨 있게 해서 이익을 남기는 게 유능함의 잣대였다. 수학의 비례식 또는 선형방정식을 풀어야 했고, 기준치를 정하는 어려움은 본격적인 교역의 최대 장애였다. 화폐의 도입에는 그 가치를 보증하는 국가나 신용도 최상의 기구가 필요했다. 지금도 위조화폐 제작을 중범죄로 다루고, 과도한 화폐 발행 국가는 화폐가치의 급락을 겪게 되는 이유다.

장구한 인류 역사에서 화폐는 항상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었다. 시대 상황이 어수선하면 현금을 장롱 속에 쌓아두면 됐고, 기존 질서를 뒤집는 정변이 일어나면 화폐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다 신용카드가 나왔다. 은행 이체로 돈이 오고 가기 시작했다. 무슨 페이라는 이름 붙은 전자화폐가 우후죽순이어서 스마트폰만 가지고 다니면 웬만한 건 다 살 수 있다. 명동에 오는 중국 관광객들이 알리페이를 쓰는 통에 예전의 환전상도 보기 힘든 시대가 됐다.

박형주 아주대 석좌교수 수학
그러더니 아직도 실체가 모호한 비트코인이 대유행이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이런저런 가상화폐가 나오더니 여기에 투자한 일확천금 성공담이 나돈다. 돈 번 사람이 있으면 돈 잃은 사람도 있을 것인데, 블록체인이다 뭐다 하는 개념 설명은 외계어 같아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다.

가상화폐 광풍이라고 불릴 정도로 가치의 폭등에 따른 우려도 점증하고 있다. 가상화폐의 원조 격인 비트코인은 2009년 1월에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가명을 쓰는 개인 또는 그룹에 의해 공개 소프트웨어의 형태로 등장했다. 1비트코인의 가치는 2010년 3월에 0.003달러였으나 최근엔 8000달러를 넘어서 연내 1만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2010년에 1달러를 투자했다면 지금은 300만달러쯤 됐을 것이라는 소리다.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다가 어느 날 붕괴해버린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과 비교되곤 하는 이유다.

기축통화라거나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같은 개념을 아예 상정하지 않는 가상화폐를 화폐로 볼 수 있는가는 분명치 않다. 가상화폐의 큰손이던 중국은 초기화폐제공(ICO)을 금지했고,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시작됐다. 가상화폐에 사용되는 암호화 기술이 제공하는 익명성 때문에 범죄집단에 의한 오용 문제도 지적된다.

이러한 논란의 와중에도 주류 금융시장에서 가상화폐를 수용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최근 세계 최대 파생상품 거래소인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비트코인 선물 상장을 결정했다. 며칠 전엔 스위스 중앙은행 총재는 “가상화폐는 화폐라기보다는 투자대상”이라고 발언해서 주목을 받았다. 가상화폐를 금융시장에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화폐성을 부정한 측면에 더 주목하는 견해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거래세 도입 논의가 시작됐는데, 화폐가 아닌 투자 대상으로 보는 견해다.

대부분의 가상화폐는 암호화와 분산화라는 요소를 가진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해 있어 암호화폐라고 불리기도 한다. 암호화는 보안을 보장하고 분산화는 안정성을 보장한다.

블록체인 개념은 중앙 통제가 아닌 분산 저장을 통한 투명성이 핵심이다. 일정 기간의 거래 정보가 모여 암호화된 블록을 형성하고, 이 블록은 모두에게 공유된다. 각종 보안 장치로 철통같이 보호되는 중앙의 단일 서버는 007 같은 해커가 들어오면 깨지지만, 암호화된 분산 공개는 이런 해킹에서 안전하다는 철학이다.

이러한 블록체인 개념은 당연히 암호화폐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될 수 있다. 블록체인화된 납세 기록이나 학교 생활기록부는 조작이나 해킹이 거의 불가능한 투명한 보관시스템이 된다. 익명성을 가진 조작 불가능한 직접투표시스템도 블록체인으로 만들 수 있다.

지불의 수단이자 투자의 대상으로 자리 잡는 데 성공한 가상화폐가 이제 화폐의 영역으로 들어가려면 국경을 넘는 공동화폐의 존재에 대한 국제적 논의와 컨센서스가 다음 숙제가 아닐까 싶다.

박형주 아주대 석좌교수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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