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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생 함께" 황혼의 약속, 사랑이었나 계약이었나

입력 : 2017-11-25 14:05:45 수정 : 2017-11-25 14: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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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5천만원 반환하라' 법정 다툼으로 끝난 '7080 로맨스'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에서 한 노인이 계단에 앉아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30대에 남편과 사별한 뒤 청소일로 어린 세 아들을 홀로 키운 A 할머니. 아들은 모두 가정을 꾸려 분가했지만 70대를 바라보는 할머니는 빈손이었고 결국 막내 부부 집에 얹혀살며 하루하루를 소일했다.

그런 할머니의 앞에 15살 연상 B 할아버지는 운명처럼 나타났다. 얼마 전 아내를 떠나 보낸 할아버지는 퇴역 군인답게 키가 크고 남자다웠다. 둘은 나이 차를 넘어 조금씩 가까워졌고 결국 '남은 인생을 함께하자'며 둘 만의 살림을 차렸다.

하지만 이들을 갈라놓은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동거 5년여만인 2015년 다툼 끝에 할아버지가 집을 나간 것이다. 할머니 홀로 남은 집에는 며칠 후 할아버지의 '소장'이 도착했다. 할머니를 상대로 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이었다.

할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함께 살며 보살펴 주겠다는 약속 때문에 할머니에게 돈을 준 것"이라며 "헤어졌으니 돈을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세보증금 4천만원, 현금 7천만원, 동거를 탐탁지 않아 하던 할머니 막내아들에게 준 4천만원 등 1억5천만원이라는 거금이었다.

막막해진 할머니는 법률구조공단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법정에서 할머니 측은 "죽을 때까지 돌봐주겠다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지 금전 계약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할머니 측은 할아버지 사후에 국가유공자 연금이 사실혼 관계인 할머니에게 돌아갈까 봐 자녀들이 둘을 억지로 헤어지게 한 게 아니냐고도 주장했다.

1심을 맡은 대전지법은 양측이 평생 서로 돌봐줄 것이라는 기대나 다짐이 있었지만, 이것이 '부담부(조건부) 증여 계약'이었다고는 볼 수 없다며 할머니 승소 판결을 내렸다.

2심도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함께 살던 집의 전세보증금 절반 2천만원은 할아버지에게 돌려주라고 화해를 권고했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양측은 법원의 권고를 받아들였고, 결정이 지난달 초 확정되면서 황혼의 약속은 씁쓸하게 끝이 났다.

할머니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황철환 변호사는 "배우자를 사별하고 같은 처지의 이성을 만나는 노인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이해해주는 고마움에 금전을 증여하는 일이 간혹 있다"며 이들의 사례와 같은 법적 문제를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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