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밀착취재] 곳곳에 '머드 볼케이노'… 액상화 현장조사 가보니

입력 : 2017-11-22 20:51:32 수정 : 2017-11-22 23:16:3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포항 진앙 주변 8곳 시추작업 현장 가보니
“자, 여기. 땅 위에 난 구멍 아래로 이 선이 보이죠? 이게 밑에서 모래가 올라온 길입니다.”

22일 오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망천리. 지열발전소와 동해선 철교를 옆에 끼고 있는 이곳에서 질퍽한 논길을 따라 100m쯤 걸어가니 흡사 갯벌 조개 구멍 같은 분화구가 드문드문 나타났다. 지진이 나자 모래와 진흙이 압력에 밀려 땅 위로 흘러나온 ‘볼케이노’의 분화구다. 이곳에서 액상화 조사를 진행 중인 손문 부산대 교수(지질환경과학)는 분화구 밑으로 조심스럽게 파 놓은 구덩이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머드 볼케이노의 단면은 분화구를 향해 땅 밑에서부터 액상화한 토양이 훑고 올라온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었다.
송도동 소나무숲 액상화흔적.

액상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높은 지하수위와 지표 가까이 자리한 사질토(모래층), 그리고 규모 6.0 이상의 지진이다. 액상화 현장조사는 시추를 통해 이 세 조건이 충족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손 교수가 여기서 시추한 토양은 지표 7m 지점까지 진흙-사질토-진흙 순서로 쌓여 있었다. 손 교수는 “빽빽한 진흙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모래층이 끼어 있으면 지진 발생 시 모래층에 압력이 집중돼 결국 지표로 뚫고 나온다”고 전했다.

부서지는 연일층군.
액상화를 일으킬 지하수도 있어야 한다. 손 교수팀은 단층 조사를 위해 트렌치(깊이 3∼4m로 넓게 판 구덩이)도 파놓았는데 밤 사이 지하수가 3분의 2 정도 차 올랐다. 지하수계가 지표 가까이 있다는 뜻이다.

액상화 세 번째 조건인 강한 규모는 무른 지반이 대신했다. 망천리 지하 15∼200m에는 연일층군이라 불리는 퇴적층이 있는데 24.5m에서 퍼올린 토양을 직접 만져보니 표면이 분필처럼 쉽게 부서졌다. 여기서 건물을 지을 때 말뚝을 200m 아래까지 박지 않으면 말 그대로 ‘사상누각이겠구나’ 싶었다.

손 교수는 “이 정도의 액상화는 규모 6.5 이상일 때 나타난다”며 “지질의 영향이 그만큼 크다”고 강조했다.
모래층과 진흙층 경계.
시추 샘플 설명하는 손문 부산대 교수.

견학온 인도 출신의 한 연구원은 “인도는 지진 다발지역이고 액상화도 낯선 현상이 아니지만 이렇게 광범위한 액상화는 처음 본다”고 놀라워했다.

망천리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학성리에서는 기상청과 행정안전부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액상화 조사가 한창이었다.

정부 현장조사팀은 액상화 제보가 들어온 곳과 진앙 반경 3㎞ 구간에서 8곳을 골라 시추를 하는데 이날은 두 곳에서 진행 중이었다. 학성리 현장은 4m까지 파내려갔지만 아직 사질토가 나오지 않았다. 전날 망천리에서는 4.5m 깊이에서 사질토가 나왔다고 한다.
송도동 한 아파트. 갈라진 땅 사이로 땅속에서 올라온 모래가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송도동 주택가
정민수 재난안전연구원 연구사는 “남구 송도동 주택가 10여곳에서 액상화 의심현상이 나타났다”며 “(기울어진) 대성아파트는 균열만 확인됐는데 송도동 주택가에서는 갈라진 땅바닥 사이로 흙이 올라와 액상화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정부 조사단은 이번 주 시추작업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분석에 들어갈 예정이다.

11·15 포항지진 후 정부와 국회는 지진 관련 예산을 증액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고 손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미국, 일본은 진작부터 단층지도, 액상화지도를 만들어놨고 중국은 지질만 전문으로 하는 대학이 있다”며 “우리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포항 지열발전소가 포항 지진과 관련 있다는 주장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항=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