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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나를 깨우는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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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24 10:00:00 수정 : 2017-11-22 21: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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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산사 여행 선암사·송광사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중략)

-정호승의 詩 ‘선암사’-

선암사 가는 길에 만나는 승선교는 커다란 돌을 차곡차곡 포개 쌓았다. 선암천 바닥의 돌들과 어우러져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무지개다리 중 가장 자연스럽고 우아하다는 말을 듣고 있다.
하루가 또 지났다.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올해 달력도 이번 달만 뜯어내면 더 이상 뜯을 필요가 없게 됐다. 누군가에게 ‘올해도 열심히 잘 보냈다’, ‘충분히 열심히 했다’고 위로를 받고 싶어질 때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치는 이들 역시 치열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먼저 다가가 커피 한 잔을 건네며 서로 위로를 해줘도 좋지만, 때로는 직접 자신을 토닥여주자. 선물을 사주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좋지만, 단 하루라도 아무런 말 없이 산사길을 따라가며 주위의 풍광을 담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가을이 끝나가고 겨울 문턱에 다다른 이맘때 산사는 화려함보단 얼마 남지 않은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과 바닥에 쌓인 낙엽 밟는 소리의 고즈넉함이 묻어 있다. 이 풍광에 동화되려면 홀로 걸어야 제맛을 느낄 듯싶다.

전남 순천 선암사는 적막한 산골에 자리한 늦가을 정취를 품은 고찰이다. 선암사에 갈 때 만나는 선암천에 비친 단풍과 계곡에 살포시 떨어진 나뭇잎이 어우러져 물 위에 또 하나의 가을 풍경을 그리고 있다.
전국에 많은 사찰이 있지만, 전남 순천의 선암사는 적막한 산골에 자리한 늦가을 정취를 품은 ‘산사’의 모범답안 같은 곳이다. 조계산 동편 자락에 있는 선암사는 가는 길 옆으로 선암천이 나란히 흐르고 있다. 졸졸 흐르는 시내 소리를 길동무 삼아 10여분 산책길을 걸으면 승선교를 만난다.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 승선교는 커다란 돌을 차곡차곡 포개 쌓았다. 선암천 바닥의 돌들과 어우러진 모습이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무지개다리 중 가장 자연스럽고 우아하다는 평을 듣는다. 승선교를 지나면 작은 시내로만 보였던 선암천의 새로운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계곡 한편으로 다양한 모습의 기암괴석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런 풍광을 옛 사람들도 놓치고 싶지 않았는지, 누각이 한 채 서 있다. 강선루다. 선암천을 즐기러 선비들이 선암사를 찾자, 선암사 경내로 들어오지 않게 누각을 지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강선루를 지나면 선암천의 기암괴석은 사라지고 깊은 산속에서 마주칠 듯한 이끼 낀 계곡의 풍광이 펼쳐진다. 계곡물에 살포시 떨어진 나뭇잎과 아직 떨어지지 않은 나무의 단풍잎이 계곡에 비친 모습이 어우러져 물 위에 또 하나의 가을 풍경을 그리고 있다.

원통전 문의 장식은 다른 사찰에서 보기 힘든 화려함을 자랑한다. 장식 아래에는 달에서 절구 찧는 토끼 조각 그림과 계수나무와 새 두 마리 조각 그림이 있는데 다산을 의미한다.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전 등 전각의 빛바랜 단청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대웅전을 바라보고 오른편에 자리한 심검당 환기창엔 ‘수(水)’, ‘해(海)’ 글자가 한자로 장식처럼 투각돼 있다. 선암사의 전각들이 빈번하게 불타자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이와 같은 처방을 한 것이라고 한다.

대웅전 뒤편의 원통전은 정(丁)자형 건물로 절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특이한 건물이다. 원통전에는 ‘대복전’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조선시대 정조가 아들을 갖지 못해 노심초사하고 있을 때 선암사 눌암대사의 100일 기도를 통해 순조를 얻게 되었다. 순조가 고마움의 표시로 친필 현판을 하사한 것이다. 원통전 문의 장식은 다른 사찰에서 보기 힘든 화려함을 자랑한다. 


선암사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지은 지 300년이 넘는 해우소다. ‘팔(八)’자형 맞배지붕과 굴곡 심한 목재를 그대로 사용한 모습 등에 눈길이 간다.(위 사진) 화장실에 앉으면 앞에 환기창이 뚫려 있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선암사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지은 지 300년이 넘는 해우소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고 했던 정호승 시인의 ‘선암사’에 나오는 그 해우소다. ‘팔(八)’자형 맞배지붕과 굴곡 심한 목재를 그대로 사용한 모습 등에 눈길이 간다. 출입구에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왼쪽은 남자용 오른쪽은 여자용으로 구분되고, 화장실에 앉으면 앞에 환기창이 뚫려 있는데, 경치 감상은 덤이다.

송광사의 임경당이 맑은 계곡물에 반사돼 만들어내는 정취는 송광사 풍경의 백미다.
순천 송광사 일주문을 지나면 세월각과 척주각이 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싣고 저승으로 가는 가마인 영가가 하루를 머물며 속세의 때를 씻어내는 곳이다.
선암사 반대편인 조계산 서편엔 고려시대 16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 송광사가 있다. 송광사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건물이 세월각과 척주각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단칸짜리 건물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싣고 저승으로 가는 가마인 영가가 하루를 머물며 속세의 때를 씻어내는 곳이다. 그 옆으로는 계곡을 건널 수 있도록 놓인 다리 능허교와 그 위에 정면 1칸, 측면 4칸의 우화각과 임경당이 있다. 맑은 계곡물에 반사돼 만들어내는 정취는 송광사 풍경의 백미다. 

스님들이 공부하는 승보사찰이다 보니 송광사에는 은은한 소리를 내는 풍경이 없다. 풍경이 없는 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가 스님들의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으로, 최근 작은 풍경을 달아놓긴 했지만 소리는 나지 않는다. 석탑과 석등도 없는데 송광사 터가 무거운 석탑을 세우면 가라앉는다는 얘기가 전해져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순천=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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