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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마운드선 강심장, 밖에선 훈남… 올 최고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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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21 20:48:24 수정 : 2017-11-22 01:5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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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정규리그·한국시리즈 MVP 동시 석권한 양현종 프로야구에서 자유계약선수(FA)도 아니면서 그 거취가 FA 이상으로 주목받는 선수가 있다. 바로 2017년 KIA를 우승으로 이끌며 사상 최초로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를 동시 석권한 좌완 에이스 양현종(29)이다. 그는 지난해 이미 FA 계약을 맺었다. 계약기간 1년에 22억5000만원(계약금 7억5000만원에 연봉 15억원)이라는 예상 밖의 내용이었다. 양현종이 4년 후에나 다시 FA 자격을 얻기 때문에 3년을 포기한 불리한 조건이다. 실상은 이렇다. 지난해 양현종이 해외로 진출할 것이라 생각한 KIA는 최형우에게 4년 100억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했다. 그런데 양현종이 KIA 잔류를 선언하자 4년 계약을 할 여력이 없었다. 대신 KIA는 1년 계약을 맺고 양현종이 원한다면 3년의 보유권리를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보상했다. 이렇게 양현종은 올해 다시 FA 아닌 FA가 됐다. 
2017 프로야구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MVP를 동시 석권한 KIA 투수 양현종이 21일 세계일보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며 활짝 웃고 있다. 양현종은 해외진출보다는 KIA에 남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KIA가 제시한 계약조건을 놓고 고민을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그는 이제 KIA 잔류와 해외진출의 갈림길에 섰다. 이번에도 메이저리그 구단의 신분조회요청도 왔다. 21일 장고에 들어간 양현종을 만났다. 그는 “KIA 잔류를 최우선 목표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해외진출을 완전히 포기한 것도 아니다. 마음 한구석에 도전의 욕심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즉 KIA 잔류를 위해서는 충분히 받지 못한 FA의 대접을 제대로 받아내겠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의미다. 이미 협상은 시작됐고 KIA 측은 양현종에게 조건을 제시한 상황이다. 이제 양현종의 대답만 남은 셈이다. 
광주 학강초등학교에서 처음 야구를 시작한 양현종은 동성중과 동성고를 거치며 주목받았다.

양현종이 KIA를 사랑하는 이유는 고향팀이자 자신을 정상의 투수로 키워준 구단이기 때문이다. 광주 학강초등학교에서 처음 야구를 시작한 그는 동성중과 동성고를 거치며 주목받았다. 하지만 그는 최고는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1년 선배 한기주의 그늘에 가려졌고, 동기생 중에서는 김광현, 정영일(이상 SK) 등에 밀린 ‘넘버3’였다. 김광현이 SK, 정영일은 KIA에 1차지명을 받은 반면 양현종은 비록 1순위였지만 2차지명인 드래프트로 밀렸다. 김광현은 일찍 에이스로 자리 잡았지만 지난해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에만 매달렸다. 정영일은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양현종도 KIA에서 부침을 겪어야 했다.

양현종은 KIA에서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 같은 시기를 보냈다. 2007년 데뷔 후 이듬해까지 단 1승이 전부였다. 엔트리 한 자리를 축내기보다 2군에 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당시 조범현 감독은 미래의 에이스라는 확신 속에 그를 1군에 데리고 다녔다. 일부 팬들은 조범현의 아들 조현종이라고 비아냥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2009년 양현종이 드디어 알을 깨고 나왔다. 그해 12승을 거둔 데 이어 이듬해 16승으로 승승장구했다.

이때 그를 깨운 이가 간베 도시오 코치였다. 양현종은 “간베 코치는 기술적으로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분이다. 조 감독님이 믿고 계속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면 일찍 좌절했을 수도 있다. 두 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특히 이번 한국시리즈 2차전 완봉승의 장면을 간베 코치가 직접 찾아와 지켜봤다. 그는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 제대로 보답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양현종이 올 시즌 경기 뒤 딸 지온을 안고 활짝 웃고 있다
KIA 타이거즈 제공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혜택까지 받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절을 보냈던 양현종은 2011년부터 갑작스러운 난조에 빠지고 만다. 그해 7승9패에 그친 데 이어 2012년에는 단 1승만 거두며 다시 이전의 그저 그런 투수로 돌아가 버렸다. 양현종은 “가장 힘든 시기였다. 몸이 좋지 않았는데 불성실해졌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소문까지 돌았다. 가족의 힘이 없었다면 그 시기를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2년의 방황을 마친 양현종은 2013년 다시 9승을 올리며 회복하기 시작했고 2014년부터 올해까지 꾸준히 두 자릿수 승리를 챙기며 확실한 에이스가 됐다. ‘모질이’라는 별명이 ‘대투수’로 바뀌는 계기였다. 그리고 올해 20승 투수의 반열에 오르며 팀을 우승까지 시킨 ‘최고’가 됐다.

특히 한국시리즈 2차전 1-0으로 앞선 9회 2사에서 그가 포수 김민식에게 했던 말인 “빠져 앉지 마”는 팬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상대타자 양의지와의 8구까지 가는 힘든 승부였다. 양현종은 “그때 공에 힘이 없었다. 포수 입장에서는 장타 걱정으로 맞대결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밀리면 더 어려운 승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강하게 밀어붙이자는 뜻에서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고 회상했다. 
KIA 양현종이 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9회말 구원 등판해 경기를 마무리한 뒤 포효하고 있다.

마운드에서 이렇게 강단있는 양현종이지만 그의 속은 여리기만 하다. 인터뷰 중에도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 얘기가 나오면 울먹이기 일쑤다. 첫 완봉승을 거둔 뒤 인터뷰에서는 가깝게 지냈던 외국인 투수 호세 리마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것에 대해 눈물을 흘렸고 이번 MVP 시상식장에서는 가족들 얘기에 목이 메었다. 양현종은 “특히 가족 얘기가 나오면 울컥할 때가 많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주지 못한 미안함이 큰 것 같다”고 털어 놓았다.

양현종의 KBO리그에서의 목표는 그의 등번호 54번을 영구결번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등번호도 사연이 있다. 입단동기였던 이준수가 달고 있던 번호였지만 그가 방출되자 그의 몫까지 하겠다며 일부러 선택한 번호다. 그의 모자에는 ‘DH’라는 글자도 새겨져 있다. 청소년대표 동기생이었던 이두환이 골육종으로 2012년 세상을 떠나자 그를 잊지 않겠다고 써놓은 것이다. 양현종의 따뜻하고 섬세한 면면이 느껴진다.

송용준 기자 eidy01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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