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앞서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 등이 주주 이익을 해친다며 노동이사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제시했으나 무시했다. 또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해당 안건에 대한 찬반을 묻지 않고 내부투자위원회에서 결정을 강행했다. 여권이 적폐로 몰았던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와 마찬가지로 편법으로 의결권을 행사한 것이다. 남을 비판하면서 닮아가는 꼴이다. 특히 투자위가 노동이사 찬성을 결정한 것은 지난 7일 국민연금 신임 이사장에 김성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취임한 이후인 14일이라고 한다. 정권 눈치를 보며 ‘코드 맞추기’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노동이사제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국 노조는 귀족·강성노조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제 밥그릇만 불리는 기득권 집단이다. 이런 현실에서 노동이사가 선임되면 구조조정 지연 등 경영 차질을 빚으며 분쟁 소지만 늘릴 가능성이 크다. 선진국 독일에 노동이사가 있으나 견제·감독만 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사정이 많이 다르다. 안 그래도 정부의 친노동 노선이 노골적인데 노조의 권력이 더 강화될 수 있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상장 기업만 275개에 달한다. KB처럼 정부에 순응적인 금융권을 상대로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서면 노동이사 선임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관치금융에 이은 ‘노치금융’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노동이사제를 민간기업으로 확대하기 위해 의결권 행사를 활용하게 되면 더 심각한 문제가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주요 기업의 경영권 구조에 큰 변화가 생겨 주가 하락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 국민의 노후를 책임진 국민연금의 재정이 악화하면 큰일이다. 국민연금을 흔들고 기업의 경영권 침해 논란을 부르며 투자의욕까지 떨어뜨리는 노동이사제는 시기상조다. 아무리 공약이라 하더라도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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