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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의음식문화여행]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은총, 풀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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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21 20:58:05 수정 : 2017-11-21 23: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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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궁금할 때가 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은 무슨 말일까. 특히 그가 죽음을 앞둔 사형수라면. 우리 모두는 다 떠밀려 죽음의 자리까지 가게 될 것이지만 사형수에게 죽음은 훨씬 ‘폭력’으로 느껴질 것이다. 국가기관이란 이름으로 집행되는 ‘또 다른 의미의 살인’인 셈이니까.

여기 사형수가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가 있다. “참 문모니카 수녀님, 김신부님께도 전해 주십시오. 감사드린다고, 죄송하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그분들은 어떤 시인의 말처럼 당신들의 눈물로 사랑의 풀빵을 굽는 분들, 그 풀빵을 뒤집을 줄도 아셨던 분들. 우리에게 그 따뜻한 빵을 나누어 주셨던 분들. 결국, 저의 생 모두가 은총이었음을 가르쳐 주신 분들이셨습니다.”

공지영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사형수 윤수와 자살미수자 유정이 죽음 직전에 주고받은 우정과 상처치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윤수와 죽고 싶어 몸부림치는 유정이 만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 그것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다. 작가는 의도치 않게 범죄에 연루돼 사형수가 된 윤수란 인물을 통해 죽음 직전에 가장 삶의 의미가 깊어지고 진해질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죽음 직전 삶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 그것이 가장 행복한 시간인지 모른다. 사형수 윤수는 여기서 죽음 직전 ‘사랑의 풀빵’을 기억한다. 따뜻한 빵 한 조각 풀빵.

한때 나의 아버지는 젊은 총각시절 막노동을 하며 풀빵 하나로 하루 끼니를 해결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 형제들은 그 얘기를 들으며 눈시울을 붉혔지만 수십 번 얘기가 되풀이되자 아버지의 가난이 식상해지기도 했다. 하여튼 풀빵은 가난한 이들의 식량이다. 없는 자들의 유일한 양식인 셈이다. 장발장은 굶고 있는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치다 들켜 감옥에 가게 된다. 가장 싼 마지막 식량의 보루. 그것은 생명 있는 자들에게 마지막 은총이며 최후의 사랑 같은 것이다.

날이 추워지고 있다. 풀빵은 붕어빵이란 이름으로 길거리에서 팔려나갈 것이다. 3개에 1000원. 지금도 차가운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죽음을 기다리는 자들을 생각한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통해 나의 죽음을 상상한다. 죽음을 앞둔 자들이 기억하는 음식, 기억하는 행복, 기억하는 사랑, 풀빵은 살아온 모든 삶의 시간이 은총임을 알려주는 메타포였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사이, 가을바람에 낙엽이 파지처럼 쏟아져 내릴 때, 풀빵 굽는 냄새가 거리를 메우는 것은 죽음 앞에 생이 모두 은총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은 아닐까. 따뜻한 빵 한 조각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자의 행복임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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