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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검사 변창훈에 대한 작은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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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20 21:01:33 수정 : 2017-11-20 22: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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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그 많은 걸 언제 다 살펴보시나요.”

지난 6월4일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실. 초여름 더위가 성급하게 찾아왔던 그날 변창훈 차장검사는 족히 수만 쪽은 됨직한 서류뭉치들을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얀 반소매 셔츠 차림의 변 검사는 “슬슬 살펴보다 보면 금방 합니다”며 미소를 지으며 시원한 차 한 잔을 권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단 있는 변 검사의 모습은 뇌리에 강하게 남아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배민영 사회부 기자
변 검사는 풍류를 아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특히 역사와 한시에 조예가 깊었다. 쉴 새 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 그와 대화를 나누면 배우는 바가 적지 않았다. 그의 넓고 깊은 지식에 절로 감탄하기도 했다.

경력도 화려했다. 몇 차례 공안 부장검사로 활약하다 대검찰청 공안기획관까지 지낸 ‘공안통’이었다. 변 검사의 후배들이 “우리 차장님 다음 인사 때 검사장으로 승진하실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한 데에는 그만 한 이유가 있었다.

확실한 업무처리 능력에 배려심까지 두루 갖춘 변 검사와 함께 일하는 후배 검사들의 표정은 늘 밝았다.

그를 잘 따르던 한 후배 검사는 “우리 차장님은 이제 곧 ‘중앙’(서울중앙지검)으로 가실 것”이라며 싱글벙글했다. 선배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있는 대로 드러냈다. 업무에 대한 자신감으로 무장한 변 검사 본인도 늘 의욕적으로 일했다.

공보관 격인 차장검사로 일하던 변 검사는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 받으랴, 업무 보랴 어느 누구보다 분주하게 2017년 여름이라는 지난한 터널을 관통했다.

바로 그 엘리트 검사의 일터가 서울고검으로 정해졌다는 소식은 뜻밖이었다. 주변에서도 그의 좌천성 인사는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친정’인 검찰의 수사를 방해한 ‘적폐검사’로 낙인찍혀 구속될 위기에 몰렸고 끝내 세상을 등졌다.

“그저 ‘좋은 검사’였다고 기억해달라.”

빈소에서 만난 그의 한 후배 검사는 취기가 머리 끝까지 오른 채 울먹이며 말했다. 진정성이 느껴졌다. 이런 이들이 변 검사가 숨진 당일 빈소에 문전성시를 이뤘다.

한 사람의 죽음은 분명 애석하다. 하지만 적폐청산을 위한 검찰 수사가 변 검사의 애도 분위기에 휩쓸려 동력을 잃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변 검사나 그를 아꼈던 이들에겐 미안하지만 말이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친일, 독재, 적폐를 청산하는 데 매번 실패해 미래 세대에 짐을 지웠다.

이번 일로 또다시 수사가 지지부진해진다면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 어리석은 사람들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국민이 추위 속에서 촛불을 든 목적이 단순히 대통령 한 사람을 바꾸자는 데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변 검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더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의 죽음이 나머지 피의자들의 혐의까지 씻어내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기회에 적폐청산의 끝을 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역사 앞에 떳떳하게 바로 서는 길이다. ‘불행한 검사’가 다시 나타나지 않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의 명복을 빈다.

배민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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