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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의세계,세계인] 검의 물리력, 그리고 복종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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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20 21:01:02 수정 : 2017-11-20 21: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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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권서 종교는 국가와 사회의 기반 / 알라의 숭고함보다 검의 잔혹함 더 짙어
초록색 바탕에 흰 글씨로 두 줄이 쓰여 있다.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다.’ 이슬람 신앙의 핵심이다. 하단에는 흰색의 검이 그려져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다. 종교와 검이 국가의 상징이다. 팔레스타인의 무장정치세력 하마스의 로고에도 여지없이 같은 종교적 문구와 두 개의 검이 등장한다. 레바논 시아파 무장정치세력 헤즈볼라의 노란색 깃발에는 소총이 상단에 배치돼 있다. 조직의 이름 자체가 ‘알라의 정당’이라는 의미로 종교적 색채를 담고 있다.

중동 및 이슬람권에서 종교는 삶의 체계이고 국가와 사회의 기반이다. 국가든 반정부 세력이든 모든 정치세력에게 종교는 정통성 유지와 확대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권력과 권위의 획득, 확장, 유지에 실질적 변수는 물리력이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군복을 자주 입었다. 국민에게 중요한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물리력을 강조하고 복종을 강요했다. 반발하는 쿠르드족에게는 화학무기까지 동원했다. 7년째 접어든 시리아 내전에서 집권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37만 명 이상의 국민을 학살했다.

실질적 통치에 종교보다 물리력이 더 동원되는 것이다. 유목 전통이다. 사막에 사는 유목민 남성은 생존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우물을 지키기 위해 모두 무장했다. 가장 물리력이 강한 가문이 통치세력이었다. 무장한 부족 구성원을 다스리고 전투를 지휘하기 위해 강력한 권위주의가 부상했다. 지배와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철저히 제거됐다. 이에 물리력에 복종하는 것이 중동 정치의 전통과 문화가 됐다. 21세기에 와서도 이 전통과 문화가 유지되고 있다. 2011년 민주화시위로 60년 군사정권을 몰아낸 이집트 국민은 다시 2013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를 수용하고 있다. 이슬람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를 장악하고 국가를 선포했던 시리아와 이라크의 방대한 지역에서도 주민은 무차별 공포통치를 행하던 IS를 받아들였다.

최근 사우디의 숙청 사태도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1명의 왕자, 4명의 현직 장관, 30여 명의 전직 장관과 기업인이 체포됐다. 2015년 1월 즉위한 고령의 국왕에 이어 권력 계승 1순위에 올라 있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의 정치 행보였다. 무함마드는 아버지가 즉위하자마자 국방장관이 됐다. 3개월 후인 2015년 4월에는 부왕세자가 됐다. 그리고 올해 6월 사촌형을 몰아내고 왕세자가 됐다.

11월 4일 숙청작업은 왕위를 물려받기 위한 물리력 장악의 마지막 수순이었다. 사우디의 국방 및 공권력은 세 부처로 나뉘어 있다. 국방부의 정규군, 내무부의 치안 및 정보조직, 왕권을 지키는 국가수비대다. 지난 6월 사촌형을 몰아내고 왕세자가 된 무함마드는 다음 달 7월 내무부 조직을 개편해 치안 및 정보 수집을 왕실직속 위원회로 이관했다. 축출된 사촌형 집안은 오랫동안 내무부를 담당했다. 이번 숙청작업에서 국가수비대 사령관을 담당하던 전 국왕의 아들을 체포한 것이다. 이제 모든 물리력을 장악한 무함마드의 왕위계승은 시간문제다. 중동의 권력 구도와 정치변동 기저에는 알라의 숭고함보다는 검의 잔혹한 문화가 더 짙게 깔려 있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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