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박수찬의 軍] “안보보다 정치” 무기도입에 숨겨진 정치권의 계산법

관련이슈 박수찬의 軍 , 디지털기획

입력 : 2017-11-19 05:00:00 수정 : 2017-11-19 10:55:1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촛불로 집권한 문재인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수십억달러 규모의 첨단무기 구매를 약속하는 것을 보면서 놀라고 기가 막혔다.”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직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본 진보 진영 관계자가 한 말이다. 미국의 요구에 노(No)라고 말할 것으로 예상했던 문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브로맨스에 가까울 정도의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한 당혹감이 묻어있었다.

7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장병 오찬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있다.
평택=남제현 기자
수십조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무기도입 사업은 군의 전력증강이라는 본래 목적 못지 않게 정치적 의미를 포함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에서 고가의 첨단무기를 구매하는 나라는 없다. 무기의 성능과 단가, 운용유지비, 위협이 되는 국가와의 군사적 대치 국면에 무기생산국과의 정치적 관계, 국내 정치적 환경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우리나라는 국내 정치권력의 향방과 역학관계가 무기도입사업 추진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치권력의 ‘입맛’이나 집권 여부 등에 따라 무기도입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보수보다 진보정권에서 美 무기 더 많이 사”

사람들은 흔히 보수 진영이 정치권력을 장악했을 때 미국제 무기를 더 많이 구매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미 동맹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방위산업계 관계자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미국 방산업체 입장에서는 한국에 진보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더 반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군 F-15K 전투기 편대와 E-737 조기경보통제기가 한반도 상공에서 초계비행을 하고 있다.
공군 제공
실제로 2000년대 이후 주요 무기도입사업들을 살펴보면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무기도입 의사결정에서 미묘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국내 무기시장은 미국 업체들의 독무대였다.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과 보잉은 말 그대로 국내 방산시장을 휩쓸었다. 보잉은 F-15K 전투기 60대와 E-737 조기경보통제기 4대를 판매해 최대 수혜자가 됐다. 록히드마틴은 해군 이지스 전투체계와 AN/FPS-117 장거리레이더를, 레이시온은 독일 연방군이 운영했던 패트리엇(PAC-3) 지대공미사일 시스템과 첨단 공대공미사일 등을 한국에 공급했다. 이 기간 동안 한국 방산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유럽의 유로파이터와 라팔 전투기, 아파르(APAR) 함대방공시스템, 이스라엘 IAI의 G550 조기경보기 등은 미국 방산업체의 공세와 “한미 연합작전을 위해서는 상호운용성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앞세운 미국 정부의 측면 지원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이같은 추세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어진다. 다만 유럽 등 제3국 방산업체의 실적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보다 높아지면서 미국 업체와 유럽 및 이스라엘 업체간의 경쟁이 실질적인 의미를 띄기 시작했다. 록히드마틴이 KF-16 성능개량사업, F-35A , 이지스 전투체계, C-130J 수송기 등을 수주하고 보잉은 AH-64E 공격헬기를 판매하며 한국 방산시장을 주도했으나 유럽 및 이스라엘 업체들도 타우러스(TAURUS)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A330 MRTT 공중급유기, AW-159 해상작전헬기, 스파이크 대전차미사일과 스파이스 공대지유도무기 등을 판매하는데 성공했다.

유로파이터 전투기는 세 차례에 걸친 차기전투기(F-X)에서 수주에 도전했으나 패했다.
에어버스 제공
정치권을 경험해 본 인사들은 이같은 차이점이 발생한 원인으로 정치적 성향에 따른 전략차이를 지목한다. 친미, 안보 이미지를 공고히 구축한 보수 진영과 달리 진보 진영은 미국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이미지를 보강해야 한다. 여기에 “‘안보 프레임’에 얽혀 여러 차례 곤욕을 치렀던 진보 진영은 한미 동맹을 중시한다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가안보에 쓰이는 첨단무기와 그 운용체계를 미국에서 들여오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보수 진영이 집권했을 때 정부가 미국제 무기를 도입하려 하면 진보진영이 반발하기 때문에 미국 무기 도입과정이 까다롭다. 반면 진보 진영이 집권하면 보수 야당은 미국제 무기 도입에 대부분 찬성하기 때문에 여당만 설득하면 되므로 미국 무기 도입이 쉽다”며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과 유럽 업체들의 국내 방산시장 공략을 위한 물밑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해군 P-8A 해상초계기가 플로리다 펜사콜라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現 정부 첫 무기도입사업 놓고 관심 집중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처음으로 공식 착수할 무기도입 사업으로는 차기 해상초계기 사업이 꼽힌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수십억달러 규모의 첨단무기 도입을 약속한 상황에서 진행될 차기 해상초계기 사업은 현 정부의 무기도입정책을 가늠할 시험지 같은 성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P-3CK 16대를 운용하고 있지만 북한 잠수함 위협이 커지면서 추가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 차기 해상초계기 사업은 박근혜정부 시절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초 해군은 예산 문제로 미국제 중고 S-3B 도입을 염두에 뒀다. 미국 해군이 쓰던 S-3B는 모두 퇴역해 애리조나주 사막의 항공우주 정비재생 센터(AMARC)에 보관되어 있었다. 해군은 센터에 있던 S-3B를 개량한 뒤 사용하려 했으나 개량비용과 운영유지비에 막대한 예산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S-3B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다. 대신 지난해부터 보잉의 P-8A가 급부상하면서 ‘P-8A 내정설’이 끊이지 않고 군 내부에서 흘러나왔다. 그때마다 군 당국은 “정해진 바 없다”는 공식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해상초계기 작전요구성능(ROC)이 S-3B에서 P-8A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변경하는 등 수의계약을 염두에 두는 듯 한 태도를 보여왔다.

이같은 상황은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가격이나 절충교역보다 특정 기종을 염두에 둔 수의계약 형태의 (차기 해상초계기) 사업방식이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며 “정권이 바뀌면 (사업방식도) 바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놀랐다”고 전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제 무기 구매를 요구한 상황에서 마크 내퍼 주한미국 대사대리가 9일 “앞으로 한미가 무기구매와 관련해 논의할 것이 있다면 P-8초계기 정도가 있겠다”며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결정해야 할 부분”이라고 언급한데 이어 여의도를 중심으로 여권 실세 연루설까지 돌면서 사업 공식 착수 전부터 논란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럽 에어버스의 A330 MRTT 공중급유기는 당초 예상을 깨고 한국 공군의 공중급유기로 선정됐다.
에어버스 제공
항공전문가들은 공중정찰자산의 변화 추세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전에는 조인트 스타즈나 E-3 조기경보기처럼 대형 기체에 장비를 탑재했다. 전자장비 크기를 작게 만드는 기술이 부족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IT의 발달로 작은 크기의 장비로도 우수한 성능을 낼 수 있게 되면서 대당 단가와 운영유지비가 저렴한 비즈니스 제트기를 플랫폼으로 사용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공군의 조인트 스타즈 대체 사업에서 록히드마틴과 노스롭 그루먼은 봄바디어나 걸프스트림 중형 비즈니스 제트기에 첨단 레이더를 장착한 정찰기를 제안하고 있다. 영국이 사용중인 아스토(ASTOR) 정찰기도 봄바디어 비즈니스 제트기에 전자장비를 얹은 형태다. 사브의 글로벌아이와 IAI의 G550 조기경보기도 비즈니스 제트기다. 첨단 장비의 운영유지비가 폭증해 재정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을 피하려면 이에 대한 면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방위산업 시장 특성을 갖고 있다. 사우디처럼 100% 무기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도 아니고, 대만이나 일본처럼 미국제 무기만 구입하는 나라도 아니다. 국산 무기와 외국 무기가 서로 경쟁하고, 미국 방산업체와 유럽 등 제3국 방산업체가 사업 수주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경쟁을 촉진해 예산을 절감하고 무기도입 대가로 기술을 이전받고 부품생산물량을 확보해 국내 방위산업을 진흥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이같은 조건을 잘 활용한다면 국가안보는 물론 방산수출로 더 많은 국익을 창출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고려’에 의해 미국제 첨단무기만 바라보고 무기도입사업을 추진하면서 가격은 비싸게 주고 기술이전은 적게 받는 형태가 반복됐다. 그 결과 핵심기술 분야에서의 해외 의존도는 낮아지지 않고 있다.

수의계약을 했던 F-35A 도입과정에서 발생한 한국형전투기(KF-X) 관련 핵심기술이전 문제와 중고 S-3B 도입 검토, 주한미군 중고 CH-47 수송헬기 도입 등 이명박, 박근혜정부의 정책결정을 비판하면서 방위산업 진흥과 국방획득체계 개선을 강조했던 현 여권이 미국제 첨단무기 도입 문제를 ‘정치적 고려’에 의한 계산에 따라 처리할 것인지, 법과 규정에 의거해 원칙대로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다.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에 필요한 무기 대부분을 미국에서 도입하는 것만이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정치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원칙에 따른 안보이익 증진이 장기적 관점에서 미국의 존중을 이끌어낼 가장 좋은 방법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