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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예상 못한 위협에 가장 크게 공포 / 내 주변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인식해야
수능 전날인 수요일 포항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했다. 경주에서 지진이 일어난 지 1년여 만의 일이다. 특히 59만명 수험생의 수능일자까지 연기되는 역사적인 사건이 생겼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입시란 한 개인뿐 아니라 온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제도이다. 그런데 대학입시의 첫 관문인 수능이 이런 천재(天災)로 연기됐다. 그 많은 수험생과 가족의 혼란, 그리고 입시를 치르기 위해 준비한 대학을 비롯한 여러 기관은 처음 맞이한 이 재난에 우왕좌왕하고 있다.

경주 이후 우리나라도 지진의 위험지역임을 어슴푸레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제 확실히 그렇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간은 예상치 못한 위협에 공포를 가장 크게 느낀다. 준비할 심리적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해서 예측가능한 곳이라는 믿음이 무너져 버린다. 한 사회를 지탱하는 주된 힘은 안전한 곳이라는 기본 믿음이다. 이런 안전감을 해치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천재가 있을 때 가장 불안감이 크다. 예측도, 대응도 어렵기 때문이다. 예측해서 대피하는 것도 어렵고, 맞서서 막아내는 것도 사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위력 앞에서 인간이란 아무 힘도 쓸 수 없는 보잘것없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재난이나 위기 상황일 때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게 된다. 갑작스러운 외부 자극에 대비하기 위해 교감신경계에서 호르몬을 배출한다. 그래서 혈당 수치가 증가하고, 동공이 확장되며, 땀을 흘리고, 심박동 수가 증가하고, 근육이 긴장하는 등의 반응을 보인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이로 인해 대처반응이 늦어질 수 있다. 자신의 신체반응에서 느껴지는 공포감에만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그 감정으로 지금 어떤 문제가 일어났고, 어떻게 대처해서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사고나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 그래서 재빠르게 행동하지 못하면서 더 큰 피해를 보기도 한다.

또한 인간에게는 위험을 인식하고 싶지 않은 속성이 있다. 바로 ‘정상화 편향’ 심리이다. 위험하고 위협적인 상황이건만 그다지 위험하지 않고 안전할 것이라고 인식하고 싶어한다. 위급한 상황임에도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관찰하고, 더 확실한 정보가 생길 때까지 지체하는 경향성이다. 일상생활에서 정상적으로 해왔던 행동을 그냥 하고 싶은 성향 때문이다. 그래서 긴급하게 행동하기보다는 정보 수집만 하면서 시간을 지체함으로써 더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지체는 꼭 그 현장에서만 있는 것도 아니다. 재난에 익숙지 않은 우리 모두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제 재난은 어쩌다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내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경상도 지역에만 일어나는 먼 나라 일처럼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 위험을 주입시키고 대처행동을 습관화해야 한다. 위기 상황을 탈출할 때 자신에게 평소 익숙한 길을 이용해 탈출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우리나라는 지진에 안전한 나라가 아니다. 온 국민이 지진에 대응하기 위한 마음가짐과 실제 행동수칙을 일상화해야겠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재난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자.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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