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금융인들은 와인을 미래의 투자처로 간주했다. 일찌감치 한정자산인 와이너리 확보경쟁에 뛰어들었다. 병당 수백만원에 이르는 고가 와인은 공급제한에 대한 과잉 수요가 빚어낸 참사이다. 뒤늦게 눈뜬 미국은 브랜드화에 열을 내고 있다. 영국 여왕이 공식방문하자 백악관은 만찬용으로 와인을 내놓으면서 미국산이라고 자랑했다. 여왕의 명성을 업고 와인을 홍보한 것이다. 이란도 1979년 이란혁명 이전까지는 와인산업이 번창했다. 이슬람이 등장하기 전 페르시아의 시문학에서 수천년간 와인이 주요한 소재로 등장한 것을 보면 와인산업이 지구를 돌고 있다.
한국은 와인식민지이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을 계기로 와인이 홍수처럼 밀려 들어와 한국인 입맛을 바꾸어놓았다. 수입 와인이 돈을 퍼담아가고 있다. 한국 토양이 카베르네 소비뇽 등 서구 와인용 포도 재배에 적합하지 않다고 알려지면서 수요 욕구가 더 강해졌다. 한·미 정상이 2013년 오미자를 원료로 만든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으로 건배를 하는 등 한국 와인 알리기 시도가 있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그제 조지아에서 8000년 전 와인용 토기가 발견됐다. 고고학자들은 토기를 분석한 결과 와인을 발효시킨 흔적을 찾아냈다고 한다. 와인에 대한 관심을 또 한번 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홍보성 발표이다. 신라 토기를 대표하는 기마인물형 토기 주전자는 술주전자로 사용됐다고 하는데 한국 와인을 시음한 흔적은 왜 못 찾는 걸까.
한용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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