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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새끼 때부터 데려와 키운 고양이/쥐약 먹고 죽은 쥐를 잡아먹고/죽어가던

그 모습을 기억한다,

(…)

차병원에서 고고의 울음/터뜨리며 태어나서/집으로 데려온 자식새끼/

집에 온 그날부터 밤에도 낮에도 울어//아내도 나도 꼬박꼬박 새우는 나날/

죽어가던 자식의 맑디맑은 눈을 기억한다//

화장실에서 꽈당 넘어져 다친 허리/요양병원에서 꼬박 십년을 누워 있다

돌아가신 장모님/한 삼십여 분 할 말도 없어 서로 쳐다보기만 하다/인사를

하고 일어서면 가지 말라는 말 대신/아내와 나를 쳐다보던 글썽글썽한 눈을

기억한다//눈빛이 반짝여도 눈물이 앞을 가려도/때 되면 영영 감게 되는

것이다/고양이는 땅에 묻었고/자식새끼와 장모님은 태웠다 재가 되었다/

내 뇌리에는 슬픔 가득한 눈만 살아 있다


원은희


중학교 시절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차마 꺼내 놓을 수 없는 시인의 슬픔이 여기 다 모여 있다.

새끼 때부터 데려와 키운 고양이가 쥐를 잡고 나서 득의양양하던 눈,

그 고양이가 쥐약 먹은 쥐를 잡아먹고 죽어가던 깊디깊은 눈.

태어나서 얼마 안 된 시인의 아기가 죽어가면서 아빠를 바라보던 맑디맑은 눈.

요양병원에서 꼬박 십년을 누워 있다 돌아가신 장모님이 가지 말라는 말 대신

아내와 시인을 쳐다보던 글썽글썽하던 눈.

눈빛이 득의양양하고 맑디맑게 반짝거렸어도, 눈물이 글썽글썽 앞을 가려도

때가 되면 눈을 감게 된다.

고양이는 땅에 묻혔고, 꼬물 꼬물대던 아기와 장모님은 재가 되었다.

그들의 실체는 이미 사라졌고,

슬픔 가득한 눈물만이 시인의 눈에 잠잠 고여 있다.

박미산 시인·서울디지털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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