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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금성 태화전 넓은 뜰에 홀로 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 말고 누가 이렇게 서 봤을까, 누가 이런 대접을 받았을까.” 선물 보따리는 더 대단했다. 100억달러? 아니었다. 중국이 조공 바치듯 풀어놓은 보따리는 2535억달러.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드디어 아메리카 퍼스트가 통했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사귄다’고 했던가. 당찬 비판의 날은 무디어졌다. 미·중 기업인모임에서 중국의 불공정무역을 비판하던 말이 갑자기 바뀌었다. “중국을 비난하지 않겠다. 한 나라가 국민을 위해 다른 나라를 이용하는 것을 누가 탓하겠는가.” 미 언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숫자놀음에 트럼프가 놀아났다.” 북핵·무역불균형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했으니. 트럼프 대통령은 당했다. 누가 뭐래도 승자는 시진핑 국가주석이다.

그런 ‘싸움의 기술’은 어디에서 단련한 걸까. 답을 역사에서 찾아본다.

청 연경에 간 담헌 홍대용과 연암 박지원. 연경은 지금의 베이징이다. 그들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왜? 연경 거리를 누비는 상인들을 봤기 때문이다. 사행단으로 간 조선 선비들이 찾은 유리창. 그곳은 아직도 그 이름 그대로 천안문 서남쪽에 남아 있다. 유리창 거리의 포자(鋪子·가게)는 1000개를 웃돌았다. 없는 물건이 없었다. 한양 육의전? 시골거리의 가게처럼 느껴졌을까. 그들은 그곳에서 대청제국을 일으킨 ‘실용의 힘’을 본다. 공자 왈 맹자 왈을 외며 성리학 이념에 사로잡힌 조선. 개혁을 부르짖는 실학은 그로부터 비롯된다.

지금의 중국은 한족 세상이다. 그렇다고 그 흐름이 어디 가겠는가. “중국은 우리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는 말은 역사성을 가진 말이다. 권모술수, 거래의 기술과도 통한다.

친미·친중 이념에 사로잡힌 우리의 정치. 청와대는 한·중 정상회담 직후 “사드는 봉인됐다”고 했다. “새 출발이며 좋은 시작”이라는 시 주석의 말이 크게 들린 걸까. 신화통신 보도는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을 앞에 두고 “역사 앞에 책임을 지라”고 한 시 주석의 말을 앞세웠다. 권모술수와 거래기술 앞에서 이념은 빛 좋은 개살구 아닐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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