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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적폐청산 칼날 쥔 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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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08 23:19:20 수정 : 2017-11-08 23: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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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자살 이어 대형 스캔들 / 정치적 해석 나올 수밖에 / ‘윤석열식 수사’ 우려 많아 / 더 큰일 날 전조 아니기를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게 있다. 대형사고 발생 전에 반드시 수많은 경미 사고와 징후가 나타난다는 법칙이다. 1920년대 미국 여행보험사 직원 허버트 하인리히가 수많은 사고 통계를 다루면서 내린 결론이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수개월 전부터 균열 등 붕괴 조짐이 있었다. 심지어 당일 사고 몇 시간 전에도 같은 조짐이 보였으나 무시했다.

요즘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가 위태위태하다.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 같다. 아니 이미 일어났다. 사람 목숨을 잃는 것보다 큰일이 어디 있겠는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수사받던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가 지난 6일 투신해 숨졌다. 같은 사안에 연루된 국정원 정모 변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꼭 1주일 만이다.

전조는 있었다. 검찰 내부의 동요였다. “수사가 너무 과한 것 아니냐”, “가장 윗사람한테만 책임을 물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불만들이 터져나왔다. 검찰은 지난 2일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 등 현직 검사 3명에 대해 무더기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 지도부도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했음이 분명하다. 문무일 검찰총장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당일 밤 일선 검사장들에게 전화를 걸어 동요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는 걸 보면.

공교롭게 충격적인 투신 사망 이튿날 대형 스캔들이 한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됐다.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진이 2015년 롯데홈쇼핑에서 금품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롯데그룹 수사 때 비슷한 소문이 나돌았으나 해명이 되어 종결됐다고 알려졌었다. 여느 때 같으면 검찰이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시간을 쟀을 법하다. 이번에는 달랐다. 아침 일찍 곧장 압수수색에 들어가고 관련자 3명을 긴급체포했다. 적폐 수사 비판 여론에 ‘전병헌 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는 정치적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희준 논설위원
특수검사로 이름을 날린 검찰 고위간부 출신 변호사에게 의견을 구했다. 그는 “명색이 정무수석인데 검찰이 (물타기식으로) 그렇게는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앞뒤 안 보고 칼을 휘두르는 ‘윤석열식 수사’에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의 데자뷔 같다”면서 “노 전 대통령과 변호사·검사의 목숨 값이 다르냐”고 물었다.

윤 지검장에게 적폐청산의 칼을 쥐여줄 때 비극이 예고됐는지 모른다. 그는 2013년 댓글 사건 수사로 좌천되어 한직을 전전하다가 문재인정부 들어 화려하게 재기했다. 사심 없이 수사하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하지만 가능할까. 그는 23년여 검사 생활 중 상당 세월을 특수수사에서 잔뼈가 굵었다. 한번 쫓기 시작한 먹잇감은 절대로 놓치지 않는 게 특수통 검사들이다. 수사에 진척이 없으면 별건으로 옭아매고 사돈의 팔촌까지 뒤져 압박하고 여론을 적절히 활용하기도 한다. 윤 지검장은 그런 수사 경험이 몸에 배 있다.

댓글 사건 재수사를 자기 사람들에게 맡긴 것도 그렇다. 서울중앙지검 진재선 공안2부장과 김성훈 공공형사수사부장이 그들이다. 둘 다 사법연수원 30기로 2013년 댓글 수사팀에서 함께 일했다. 서울동부지검 등 재경 지검 부장자리에 선배인 27∼29기들이 포진한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기용이었다. 여기에 댓글 수사팀 출신의 박형철 전 검사가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으로 있다. 검찰과 여당이 아무리 적폐 수사라고 쓰더라도 야권이 정치 보복이라고 읽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지검장의 우직함은 잘 알려져 있다. 누구의 지시를 받아 수사할 성격이 아니다. 그래도 행여 검찰총장의 통제권마저 벗어나 있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 사건을 수사 현장에서 들여다보는 것과 검찰 지도부로서 비켜서 보는 건 크게 다르다. 수사 파장에 대한 예측, 속도와 범위에 대한 판단도 달라진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정권의 충견’이 되었다는 자조가 나온다. 더 큰일이 벌어질 전조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적폐를 향한 칼날이 검찰로 돌아오는 부메랑이 될지 누가 알겠나.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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