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여행] 한 번만… 간절한 모정은 오늘도 기도합니다

입력 : 2017-11-10 10:00:00 수정 : 2017-11-10 10:00:0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생애 딱 한 번은 소원을 들어준대요, 대구 팔공산
사실 소원이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한두 명이 아닌 수만명이 믿음을 품고 올랐고 고개를 조아렸다.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말이 오래전부터 전해오다 보니 진짜 이뤄 줄 것이란 믿음이 쌓이고 쌓인 듯하다. 이곳 역시 그런 기대를 품고 오르는 이들이 한 해에만 수백만명에 이른다. 과거 학력고사 시절부터 시작해 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곤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기도를 한다고 자녀의 성적이 하루아침에 나아질 리는 없지만,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부모의 염원을 탓할 이유는 없을 듯싶다.

갓바위에 소원을 빌러온 학부모가 초에 불을 붙이고 있다.
대구 동구와 경북 경산, 영천, 군위, 칠곡에 걸쳐 있는 팔공산은 만산홍엽의 절경이 한창이다. 누구는 울긋불긋 단풍이 든 산의 자태를 보려고 오르지만, 소원을 빌러 온 그들에겐 이 모습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팔공산이란 이름보다 갓바위 얘기를 하면 더 익숙할 수도 있다. 팔공산 많은 봉우리 중 하나에 있는 갓바위의 이름은 ‘관봉석조여래좌상’이다. 팔공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비로봉이 해발 1192m인데, 갓바위는 859m 봉우리에 자리 잡고 있다. 좌대의 크기를 포함해서 5m가 넘는 거대한 불상이 머리 위로 갓을 쓴 듯 판석을 얹고 있다.


대구와 경북 경산 등에 걸쳐 있는 팔공산의 갓바위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이 전해온다. 특히 불상이 쓰고 있는 갓 모양의 판석이 마치 대학 학사모를 닮았다고 하여 자녀 대입을 앞두고 소원을 빌러온 학부모들로 붐빈다.
신라 선덕여왕 7년인 638년 의현대사가 어머니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데, 불상의 솜씨로 보면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좌대와 광배 역할을 하는 바위는 붙어 있지만 판석은 분리돼 있다. 비바람으로부터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나중에 얹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갓바위가 입시철에 붐비는 것은 불상 위의 판석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불상이 쓰고 있는 갓 모양의 판석이 마치 대학 학사모를 닮았다고 하여 자녀 대입을 앞두고 소원을 빌러온 이들로 북적이게 됐다고 한다. 불상은 정감 어린 표정보다는 근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소원을 비는 입장에선 친근한 모습보다는 위엄 넘치는 모습이 효과가 더 있을 거라 생각할 듯싶다.

동화사에 한 켠에 걸린 소원지들.
갓바위는 경북 경산에 있지만 오르는 길은 대구와 경산 방향 두 구간이다. 대구 갓바위 주차장에서 오르는 길과 경산 선본사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오르는 구간이다. 두 구간 모두 산길보다는 계단을 올라야 갓바위에 이른다. 선본사 구간으로 오르면 약 30분, 갓바위 주차장에서는 1시간이 걸린다. 선본사 구간이 짧지만 계곡과 숲의 정취는 대구 쪽이 낫다.

동화사에서 한 시간 정도 걸어 오르면 있는 양진암은 팔공산 병풍바위를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어 풍광이 뛰어나다.
어느 쪽이든 계단을 올라야 해 편한 구간은 아니지만, 길이 정비되기 전보다는 한결 수월해졌다고 한다. 더구나 기도를 하며 올리는 공양미 등 시주를 과거엔 직접 들고 산길을 올라야 했지만 지금은 공양미를 갓바위에서 판매하니 수고도 덜해졌다.

팔공산은 만산홍엽의 절경이 한창이다.
팔공산은 신라 때 동쪽 토함산(동악), 서쪽 계룡산(서악), 남쪽 지리산(남악), 북쪽 태백산(북악)과 함께 중앙의 중악으로 불렸다. 신라 오악 중 하나로 영산으로 숭배돼 온 산으로 고찰이 많다. 갓바위만큼 팔공산에서 유명한 것이 동화사다. 신라 흥덕왕 7년(832년) 심지왕사가 중창할 때 오동나무 꽃이 상서롭게 피어나 동화사로 불렀다고 한다.

팔공산 일대인 대구 동구는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이 큰 전투를 벌인 곳이다. 견훤이 신라 서라벌을 공격하자, 왕건은 구원에 나섰다. 첫 전투는 팔공산 동쪽 은해사 부근에서 벌어졌는데 고려군이 패했다. 후퇴한 왕건은 부하 신숭겸이 이끄는 군대와 팔공산 남쪽에서 후백제군과 일대 접전을 벌였는데, 거의 전멸하다시피 참패했다. 이 싸움에서 왕건은 자신과 옷을 바꿔 입은 뒤 전사한 신숭겸 등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만 구해 달아났다. 후대엔 이를 동수전투 또는 공산전투라 부른다. 동수전투의 승패에 영향을 미친 것이 동화사였다. 당시 동화사는 견훤 세력과 깊이 밀착돼 있었고, 이 도움을 통해 견훤은 왕건에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 전투와 관련된 지명이 대구엔 남아 있다. 왕건이 견훤의 군사에 패한 고개 파군재와 도망가는 길에 아이들만 보이고 어른들은 없었다는 불로동, 왕건이 도망치다 마음을 놓았다는 안심 등이 동구의 현재 지명이다.

동화사 대웅전 옆에 있는 영산전에 그려진 씨름도.
동화사에선 대웅전 옆에 있는 영산전에 그려진 씨름도가 눈길을 끈다. 나라가 위급할 때 승병들이 나설 정도로 우리 불교의 특징은 호국불교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동화사에 영남승군사령부를 두어 승군을 조련·지휘했다. 사찰에서 승려들이 무예를 단련한 모습이 기록돼 있는 것이다. 사찰 입구에 있는 높이 33m의 약사대불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동화사에서 한 시간 정도 걸어 오르면 있는 양진암은 팔공산 병풍바위를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어 풍광이 뛰어나다. 팔공산의 모습을 보려면 케이블카도 빼놓을 수 없다. 단풍이 물든 산 전체를 내려다보는 맛이 일품이다. 동화사 입구에서 탑승장이 있다.

팔공산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는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조성됐다 당시 화재로 그을린 지하철벽과 불탄 자재물 등을 전시해 놨다.
케이블카 탑승장 인근엔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도 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조성한 안전체험 교육장이다. 사전예약하면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당시 화재로 그을린 지하철벽과 불탄 자재물 등도 전시해 놨다.

대구·경산=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