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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입동이다. 24절기의 열아홉 번째로, 정식으로 겨울에 들어서는 날이다. 예로부터 입동 무렵이면 긴 겨우살이를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한다. 남자들은 짚으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얹고, 겨우내 쓸 땔감을 마련했다. 여자들은 김장하기, 시래기 말리기, 베 짜기, 메주 쑤기 등의 일을 했다. 그중에서도 입동 전후에 가장 큰 일은 단연 김장이다. 입동 전후 5일 내외에 담근 김장이 맛이 좋다고 한다. 식구가 많은 이는 몇백 포기씩 담는 것이 예사여서 친척이나 이웃이 함께했다. 우물가나 냇가에서 부녀자들이 무, 배추를 씻는 모습은 한 세대 전 만 해도 낯익은 풍경이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서울지역에선 이맘때 추위를 막는 시절 음식으로 난로회(煖爐會)를 즐겼다고 한다. 전골 냄비에 쇠고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재료를 담고 육수를 부어 끓인 음식을 둘러앉아 먹던 풍속이다. 지금은 유명 한정식에서나 맛볼 수 있는 신선로가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시 기록에서 눈에 띄는 것은 노인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치계미(雉鷄米)’ 풍습이다. 치계미는 꿩·닭·쌀을 합친 말로, 우회적으로 ‘사또의 밥상에 올릴 반찬 값으로 받는 뇌물’을 뜻했다. 이런 명칭이 쓰인 것은 노인을 사또처럼 대접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렇지만 먹고살기 힘든 이들이 고급 음식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치계미를 대신해 도랑탕 잔치를 벌였다. 입동 무렵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도랑에 숨은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鰍魚湯)을 끓여 대접한 것을 말한다.

날짐승의 겨우내 먹을거리도 생각한 게 당시의 인심이었다. 김남주 시인이 ‘옛마을 지나며’란 시에서 “찬 서리 나무 끝에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라고 노래한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겨울이 닥치면 없는 이의 서러움은 배가된다. 이젠 많은 이에겐 남의 일이겠지만 아직도 연탄으로 겨울을 나야 하는 이들이 13만가구에 이른다. 올겨울엔 연탄 가격도 오르는데 연탄 기부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내가 따뜻하다고 해서 모두가 따뜻한 것은 분명 아니다. 올겨울에는 치계미와 같은 미풍양속이 곳곳에서 재현되길 기대해본다.

박태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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