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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파트 단지에 강풍이 불어 모과나무에 달린 누런 모과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아내가 관리실에서 모과 한 바구니를 얻어왔다. 식탁 귀퉁이에 뒀는데 거실까지 은은한 향기를 뿜어낸다. 못생긴 과일이 매력적인 향을 내는 게 신기할 정도다. 요즘 수도권의 한 골프장에선 라운딩이 끝날 때쯤 캐디들이 그린 주변에 떨어진 모과를 주워 내방객에게 나눠 주고 있다. 천연 방향제나 몸에 좋은 차(茶) 용도의 ‘뜻밖의 선물’이어서 다들 좋아한다고 한다.

늦가을인 요즘은 모과 수확철이다. 정확히는 저절로 떨어진다. 모과는 과일이면서도 과일 대접을 못 받는다. 사과나 배 등에 비하면 맛도 없다. 매끈하지 못하고 껍질도 거칠다. 그래서 모과가 열려도 수확하는 이는 별로 없다. 도심 아파트 단지에선 제 무게에 못 견뎌 자동차 지붕에 쿵쿵 소리를 내며 떨어져 차를 훼손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하나 못생긴 외양만 빼면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다. 본초강목에서는 “모과는 주독(酒毒)을 풀고 가래를 제거한다. 속이 울렁거릴 때 먹으면 속이 가라앉고 구워먹으면 설사에 유용하다”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힘줄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다리와 무릎에 힘이 빠지는 것을 낫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최근에는 미세먼지 해소에 모과차가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뚝배기보다 장맛’인 셈이다.

고전에선 변치 않는 사랑의 의미를 지닌 과일로 묘사된다. “그녀가 나에게 모과를 주었네/나는 그녀에게 옥돌을 주었네/보답을 하려는 게 아니라/그녀랑 친해지고 싶어서.” 공자가 구전하는 시를 묶은 시경(詩經)의 위풍(衛風)에 나오는 ‘모과’에 관한 구절이다. 당시 여인들이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잘 익은 모과를 던져주면서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썩어가면서도 향기를 잃지 않는 모과의 속성이 변치 않는 사랑을 상징한다고 본 것이다.

이쯤 되면 모과의 재발견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수록 외모보다는 향기가 중요하다. 인향만리(人香萬里)는 아니더라도 주변에만이라도 향기를 주는 삶이 돼야 하지 않나. 잘 익은 모과의 은은한 향처럼. 그런 점에서 모과는 내면을 다지게 하는 교훈의 과실이다.

박태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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