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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었던 ‘능력주의’ 알고보니 불평등의 주범

입력 : 2017-11-04 03:00:00 수정 : 2017-11-04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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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능력 평등하지 않다’서 출발 / 새로운 계급 ‘재능의 귀족’ 인정 / 지배층 양산… 부과 권력 독점 / 지나친 엘리트 숭배 미국 사회 / 금융위기 부른 리먼사태 등 자초 / ‘어떻게 망가져가나’ 냉철한 통찰
크리스토퍼 헤이즈 지음/한진영 옮김/갈라파고스/1만7500원
똑똑함의 숭배/크리스토퍼 헤이즈 지음/한진영 옮김/갈라파고스/1만7500원


“골드만삭스는 능력주의 기업입니다.” 골드만삭스는 자사 웹사이트의 인재 모집 안내문에 미래의 사원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에서 능력주의에 대한 믿음은 계층이나 이념에 관계없이 고루 퍼져 있지만, 그중에서도 크게 성공하거나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특히 능력주의를 신봉한다. 능력주의 사회가 극심한 빈부격차를 만들고 능력주의를 옹호하는 권력자와 지배층을 양산하는 것이다.

미국 정치평론가 크리스토퍼 헤이즈는 신간 ‘똑똑함의 숭배’에서 미국 사회의 과도한 능력주의 숭배가 사회 전체를 어떻게 무너뜨려 왔는지를 보여준다.

능력주의는 말 그대로 인간의 능력이나 진취성이 평등하지 않다는 점을 전제로 새로운 계급, 즉 ‘재능의 귀족’을 인정한다. 문제는 ‘재능의 귀족’에게 몰리는 막대한 부와 권력에 있다. 저자는 이들이 자신의 능력 발현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더라도, 그에 대한 보상이 과하다고 지적한다.

미국 맨해튼에 있는 헌터중고등학교는 미국 내 어떤 기관들 못지않게 능력주의를 중시한다. 헌터는 학생들이 광적으로 성적에 집착하기 때문에 별다른 자극책이 필요 없어 등수를 매기지 않는다. 2010년 졸업식에는 브루클린 출신으로 컬럼비아대 입학을 앞둔 흑인 학생 허드슨이 연설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행복과 안도감, 두려움, 슬픔보다 제가 느끼는 것은 죄책감입니다. 우리가 무료로 우수한 교육을 받은 것은 시험성적, 오직 그 한 가지 때문입니다. 그런 운과 환경 덕분에 우리가 원하던 삶을 살아온 우리는 지금 인생의 절정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영리하다는 이유로 뻔뻔하게도 그런 상황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저자는 허드슨의 연설을 언급하며 미국의 교육체제가 사회지도자로서 명석하고 도덕성 인재를 뽑는 것이 아닌, 사회적 거물을 양산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경쟁체제는 심리적으로 위험한 부작용을 낳는다”며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그것을 순전히 자기 힘으로 이뤄냈다고 믿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미국 정치평론가 크리스토퍼 헤이즈는 “능력주의는 차별을 철폐하겠다는 약속이지만, 인간이 능력과 진취성에서 근본적으로 평등하지 않다는 인식하에 새로운 계급을 인정하는 신념”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저자는 미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믿는 것은 능력주의가 아닌 능력주의 신화라고 지적한다. 이렇게 능력주의를 숭배하는 사회는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엘리트 계층은 신화를 이용해 자신들의 부정부패를 용인했고, 이러한 폐해가 리먼 브러더스 사태와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이어졌다. 저자는 “대중은 자신들 대신 결정할 적임자를 필요로 하고, 그 적임자만 있으면 사회가 매끄럽게 굴러갈 것이라고 믿는다”며 “능력주의는 인종, 성, 성적 취향에 따른 부당한 차별을 철폐하겠다는 약속이지만, 그 대신 인간이 능력과 진취성에서 근본적으로 평등하지 않다는 인식하에 새로운 계급을 인정하는 신념”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사회학자 제롬 카라벨의 말을 인용해 “선진국 중에서 미국만큼 기회의 평등에 집착하면서 조건의 평등에 무관심한 나라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극단적인 능력주의 사회의 부작용을 바로잡기 위해 “미국을 더 평등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브라질의 빈부격차가 해소된 배경에는 빈곤층에 대한 분배정책이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하며, 미국에서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더 평등한 사회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는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이 불가능하거나, 여론의 반대가 많아서가 아니다”며 “극심한 빈부격차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세력과 기관들이 평등주의의 습격으로부터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권력을 과도하게 키운 현실”이라고 꼬집는다.

책은 미국 사례를 바탕으로 전개되지만, 미국과 마찬가지로 능력주의를 우선시하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높은 지능은 권력층에게 빠져서는 안 될 필수적인 덕목이지만, 능력주의 사회의 특징은 ‘똑똑함의 칭송’에서 그치지 않는다. … 명석함은 순위를 매길 수 있고, 그래서 부에 순위를 매기듯 지능에도 순위를 매길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회에서 지능은 가장 소중한 가치가 된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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