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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호의 사서삼매경](36)'어부지리' 정치인 박근혜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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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21 13:00:00 수정 : 2017-10-21 01: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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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춘추전국시대 연나라가 조나라의 침공 위협을 받던 때였다. 연왕은 소진의 아우 소대를 보내 조 혜문왕을 설득하게 했다. 소대가 조 혜문왕에게 말했다. 신이 강을 건너던 중 큰 조개가 뭍으로 나와 볕을 쬐는 것을 봤습니다. 황새 하나가 오더니 부리로 조개의 살을 쪼았습니다. 놀란 조개가 급히 껍질을 닫자 황새의 부리가 그 사이에 끼고 말았습니다. 황새는 오늘 내일 비가 없다면 곧 조개가 바싹 말라 죽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조개는 오늘 내일 먹지 못한다면 곧 황새가 굶어 죽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둘은 끝까지 놓지 않았고 오래 버티다가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소대가 다시금 말했다. 연과 조가 오랫동안 싸운 탓에 국력이 쇠약해졌습니다. 신은 진나라가 어부처럼 손쉽게 연과 조를 손에 넣을까 걱정이 됩니다. 소대의 말을 옳다 여긴 조 혜문왕은 전쟁을 포기했다. <전국책 중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치를 거부했다. 정치를 재개했다. 6개월 만에 처음으로 법정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법치에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 자신에게 마침표가 찍혀야 한다고 일갈했다. 모든 역사적 멍에와 책임을 지고 가겠다고 힘주어 말하며 재판을 사실상 보이콧했다. '태극기' 총동원령도 내려졌다. 친박 성향의 보수단체들이 저항을 선언했다. 서울 도심 곳곳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어 치안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변호인단도 전원 사임계를 냈다. 결사의 각오로 배수진(背水陣)을 쳤다. 재판부를 압박해 기사회생을 노리고 있다. 귀추는 불투명하다. '대박'보다는 쪽박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우선 전략의 완결성에서 문제가 있다. 프레임 전쟁을 발발시키려면 '정치보복'이 아니라 '사법살인'을 지적했어야 했다. 보복은 가해자들이 하는 말이다. 앙갚음을 당할 만큼 남에게 잘못했다고 자인하는 꼴이다. 현 집권세력과는 크게 격돌한 적도 없었다. 전략의 유효함 역시 의문이다. 시기적으로는 구속연장 심사 전에 했어야 옳았다. 법의 심판대에 서서 정부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도 우스운 모양새다. 법관은 정권의 하수인이 아니다. 2007년 대선후보 자리를 내주고 읽었던 '대망'을 다시 꺼냈다는 것도 괴기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이 된다는 소설이다. 10권이 전권이라면 7권의 서두 쯤을 읽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사실 놓여진 곳은 9권 말미 정도다. 섶나무에 누워 자며 쓰디쓴 쓸개를 맛보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 차라리 적절한 고사다. 솜씨가 어설픈 것을 보면 목적은 단순하겠다. 1심 선고 연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소시효가 몇 달 남지 않았다. 시기를 엇비슷하게 맞춰 정치보복의 프레임을 증폭시키려는 의도다. 올해 연말을 시점으로 이 전 대통령 회고록 2탄이 예고됐었다. 시도는 좋았지만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될 수도 있겠다. 사임계를 제출한 특정 변호사와 자주 만나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박복한 인복이다.

자유한국당 류석춘 혁신위원장(왼쪽)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년과 시민사회층 지지 확대 방안이 담긴 제5차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보수정당은 박 전 대통령과 정치적 결별을 선언했다. 자유한국당 윤리위원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청원, 최경환 의원에 대한 탈당 권유를 의결했다. 의원총회를 거쳐야 하는 두 의원과 달리 박 전 대통령은 열흘 내 탈당하지 않으면 최고위 의결을 거쳐 자동 제명된다. 전직 대통령 중 징계로 당적이 정리된 첫 사례인 만큼 개인적으로 큰 불명예이기도 하다. 보수정당이 작심한 배경에는 보수통합이라는 큰 움직임이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결합에 대한 상당한 논의가 있었다. 친박 청산이 전제조건이었다. 집으로 돌아갈 명분을 찾는 것이다. 돌아올 이들에게 명분을 챙겨주는 것이기도 하다. 자유한국당 내 주류세력에게는 비주류를 교통정리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거두만 제거하면 우두머리를 잃은 무리는 혼란에 빠진다. 금적금왕(擒賊擒王)이다. 오자서는 물고기 요리 속에 비수를 숨겨 오왕 요를 척살하는 계책으로 합려를 옹립했다. 친박은 당장 반발했다. 9명을 얻으려다 20~30명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바른정당도 난기류를 만났다. 자유한국당발 보수통합과 국민의당발 중도통합의 기류가 맞물리며 정치적 격랑지가 됐다. 국민의당 역시 거센 파도에 시달리고 있다. 당내 호남, 비호남 정서는 섞이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표류하고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의 출당을 요구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보도도 있었다. 어디든 박을 깨야하는 숙명에 놓여 있다. 합칠 수 없는 두 힘은 결국 균형을 이룰 것이다. 어떤 이들은 공중분해될 것이다.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선택받지 못한 이들은 자연도태될 것이다. 다가올 선거가 까마득하기 때문이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세계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침묵해야 보수가 산다. 구속영장이 연장된 것은 보수에게 기회다. 박 전 대통령이 자유의 몸이 되면 골치 아파진다. 신세 한탄이 자주 보도되면 '태극기'들의 마음이 흔들릴 것이다. 친박은 적극적으로 당에 구명운동을 요구할 것이다. 당 흔들기도 시도할 것이다. 탈당 징계는 꿈도 못 꿀 것이다. 친박이 청산되지 않으니 보수 대통합의 희망은 멀어져만 갈 것이다. 지지율 유출을 각오하고 친박과 결별하면 상황은 극악으로 빠진다. 구심점을 얻은 친박이 '원박' 신당을 만들면 보수는 세 갈래가 된다. 보수 핵분열이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왕좌도 내줘야 한다. 구설에 자주 오르내리면 촛불의 원성도 커질 것이다. 반성도 없고 염치도 없다며 타박할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적폐청산 불씨에 휘발유만 부어주는 꼴이다. 화마는 여기저거 옮겨붙어 보수의 이곳저곳을 태울 것이다. 도매금으로 취급받기 시작하면 보수는 쇄신할 기회마저 잃게 된다. 물론 민주정부 지지자들은 다른 행간을 읽었겠다. 결국 보수분열과 적폐청산의 두 마리의 토끼를 위한 구실만 제공하는 셈이다. 어부지리(漁夫之利)를 허용하는 것이다. 견토지쟁(犬兎之爭)도 비슷한 표현이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와 진나라가 대치했다. 제 선왕이 위나라 정벌을 위해 출병하려하자 대신 순우곤이 만류했다. 순우곤은 한자로(韓子盧)와 동곽준(東郭逡)의 고사를 언급했다. 천하 으뜸의 사냥개인 한자로(韓子盧)와 약삭빠른 토끼 동곽준(東郭逡)이 쫓고 쫓기게 됐다. 산꼭대기를 다섯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하며 결국 둘다 쓰러졌다. 마침 지나가던 농부가 사냥개와 토끼를 모두 주워 갔다. 순우곤은 제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싸우면 주변 강국들이 농부처럼 이익을 취하려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만 보고 뛰는 사냥개와 토끼가 되지 말자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소란은 보수의 아킬레스건이다. 드러나지 않을수록 유리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문재인정부가 그를 대중과 떨어뜨리려 한다는 점이다. 구속연장 심사 전 '세월호 7시간30분' 브리핑이 좋은 예다. 불필요했다.

하정호 기자 southcros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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