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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분노를 음악으로 털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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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20 21:12:35 수정 : 2017-10-20 17: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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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음악보다 격정적 음악이
놀랍게도 분노 조절에 효과적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4번
마지막 악장이 끝나면 박수 절로
얼마 전 우리 사회를 경악게 한 ‘어금니 아빠’의 여중생 살인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어떤 분은 충격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고도 한다. 우리 사회는 여러 이유로 분노할 일이 너무 많아진 것 같다. 가장 최근에 분노한 일을 떠올려보면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만큼 분노가 일상화돼 있다는 뜻이다. 분노는 잘 다스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화병으로 심신을 망치는 경우가 흔하다.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에 도움을 주는 음악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거의 모든 종류의 음악이 우리의 분노를 다스리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특히 잔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음악이 효과적이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음악 중에서 조용하고 차분한 음악보다는 강력한 사운드의 격정적인 음악이 분노 조절에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호주 퀸즐랜드대학의 실험 결과인데 실험대상자들은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록음악 중에서도 펑크와 헤비메탈 음악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매우 뜻밖의 결과라서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다. 1970년대 말 영국을 놀라게 한 펑크 그룹 섹스피스톨은 그 자체로 분노로 폭발하는 음악을 선보였다. 빠른 템포와 지르는 듯한 보컬, 헤드뱅잉 등은 그들의 찢어지고 불량스러운 복장과 함께 당시 젊은이들의 분노를 대변했다. 마찬가지로 빠른 템포와 강력한 사운드로 무장한 헤비메탈 역시 젊은이들을 열광케 하며 그 사나움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음악이 분노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말인가.

허영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음악학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4번의 마지막 악장을 들어보자. 타악기인 심벌즈의 강력한 메탈 소리와 함께 빠른 템포로 내려오는 선율과 쉬지 않고 몰아치는 음악, 그러다가 갑자기 찾아오는 고요한 분위기, 숨고르기도 잠시뿐 다시 긴장감을 쌓아올리기를 세 번 반복하더니 마지막에는 정신 차리기도 어려울 정도의 몰아치기로 곡을 마친다. 연주가 끝나자마자 박수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박수 소리 속으로 우리의 남은 분노는 모두 사라지고 만다.

이와 유사한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으로 베토벤의 7번 교향곡을 추천한다. 앞 부분에 반복하는 강한 비트는 마치 큰 망치로 두들기는 듯한 무거운 느낌을 준다. 이처럼 보통 약한 음을 세게 연주하는 것을 백 비트라고 하는데 록음악의 기본 비트이다. 차이콥스키에 비하면 사운드의 강력함은 조금 약한 듯하지만 몰아치는 힘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비교적 길이가 긴 이 곡들은 중간에 쉬어가는 부분이 있지만 짧은 바로크 음악 중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몰아치는 음악이 있다. 가장 강력한 예로 비발디 사계의 여름 중 마지막 악장을 들 수 있다. 현악기만으로 연주하는 음악이라서 그 사운드는 관현악단에 비해 약하지만 템포만큼은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빠르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연주자 중에는 마치 헤비메탈 기타리스트처럼 빠르기 경쟁을 하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있다.

가장 빠르게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를 뽑는다면 안네 소피 무터와 줄리아노 카르미뇰라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전체 악장을 2분 10초대에 끝장낸다. 이와 유사한 음악으로 바흐의 오케스트라 모음곡 2번의 마지막 악장인 ‘바디네리’가 있다. 비발디와는 달리 목관악기인 플루트로 연주하는 곡이다. 입으로 부는 플루트로 연주하기에 숨 쉴 틈 없이 몰아친다는 말이 적절한 곡이다. 빠르기만으로 분노를 삭일 수 없다면 일렉트릭 기타리스트인 윙베 말름스텐의 헤비메탈 버전이 남아있는 마지막 분노를 날려 줄 것이다.

흥미롭게도 언급한 곡들은 모두 한 작품의 끝을 장식한다. 음악의 끝과 함께 분노도 끝내라는 배려라고 생각한다. 분노는 오래 간직할수록 손해이다. 건강한 새로운 시작을 위해 분노를 털어버리자. 그리고 분노가 있던 그 자리를 용서와 사랑이 차지하기를 기대해 보자.

허영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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