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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길] “음식이 몸과 마음 바꿔…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입력 : 2017-10-21 14:00:00 수정 : 2017-10-21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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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 알리는 선재 스님
“음식을 해먹을 여유가 없다고요? 왜죠? 집에 부엌이 없나요? 마음먹기에 달린 거예요. 아무리 바빠도 하루 한끼, 혹은 주말에 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김치를 담글 수 있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 ‘음식 하나도 못 한다’고 말하는데 그건 자랑이 아닙니다. 음식은 여성이나 남성이나 청소년이나, 누구나 다 만들 줄 알아야 해요. 그것은 삶을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요리를 하지 않는다면 그만큼의 지혜와 즐거움, 기쁨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30년 넘게 한국 사찰음식을 지키고 알려온 선재 스님은 ‘바쁜 현대인들이 집에서 음식을 만들 여유가 없다’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좋은 음식을 직접 만들고 먹는 것을 삶의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지난 13일 ‘사찰음식대향연’ 행사가 열린 경기 수원 봉녕사에 스님을 만났다. 제자들과 함께 한 점심식사 자리에는 햄과 단무지 대신 두부와 무짠지가 들어간 김밥, 찐 고구마, 신선한 과일 등에 스님이 직접 담근 물김치가 놓여 있었다. 한 입 들이켜자 심심한 맛 끝에 단맛이 올라오며 혀에 착 감긴다. “사찰식 김치에는 파, 마늘, 젓갈 대신 집간장과 차조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단맛이 나지요. 향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과 외국인들도 좋아합니다.”

선재 스님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맑은 낯빛과 또렷한 눈빛, 힘 있는 목소리를 지녔다. 그러한 모습으로 “20년 전 간경화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음식 명장 1호’ 칭호를 받은 선재 스님. 그는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를 이루기 때문에 좋은 음식을 먹으면 삶이 행복해지는 것”이라며 “좋은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남정탁 기자
스님은 스물다섯살이던 1980년 출가해 일찍부터 음식 수행에 힘썼다. 수라간 궁녀였던 외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솜씨를 물려받은 어머니, 독립운동가이면서 한의로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돌봤던 아버지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1994년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하면서 최초로 사찰음식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그 후 세상 밖으로 나온 사찰음식은 선재 스님에 의해 대중에 전파됐다. 지난해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불교조계종의 ‘사찰음식 명장 1호’ 칭호를 받았다. 스님은 “환갑 지나면 좀 쉬려 했더니 숙제가 더 생겼다”며 “진정한 사찰음식 명장은 절에서 사찰음식의 정신을 실천하고 그 음식을 드시며 수행하는 스님들이다. 내게 명장 칭호를 준 것은 사찰음식의 정신과 의미를 세상 속에서 변질되지 않도록 바르게 전하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선재 스님은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선재 스님의 이야기로 버무린 사찰음식’ 등 사찰음식 관련 저서를 펴냈고, 전국비구니회관,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 학교 등 국내 강의만 4000여회에 프랑스 르 꼬르동 블루 요리학교 등 외국 강의활동까지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촘촘히 짜인 강의 일정과 사찰음식 축제 등으로 분주한 스님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두 차례 찾아가 강의를 들은 후에야 마주 앉을 수 있었다.

- 사찰음식이란 무엇인가.

“부처님이 이야기하신 식생활 문화를 지키는 음식이다. 사람들이 부처님을 찾아가 자신의 아픔과 고민을 털어놓으면 부처님은 이렇게 물으셨다.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부처님은 음식을 약으로 여기고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를 이루기 때문이다. 사상 모든 만물은 나와 하나다. 물도 공기도 나와 연결돼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물과 공기, 흙의 기운으로 만들어졌으니 그것들이 병들면 나도 아프게 된다. 이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진리를 이해하면 농사를 짓는 일부터 음식 재료를 선택하고, 음식을 만들고 먹는 일까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음식을 대하면 몸이 건강해지고 내가 행복해진다.”

선재 스님이 가을 제철 음식으로 추천하는 은행죽과 은행구이(위 사진). 아래 사진은 늙은호박(청둥호박)국.
불광출판사 제공
- 사람들은 사찰음식을 ‘건강식’, ‘해독밥상’이라 말한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약이 되는 음식은 자연 그대로의 음식, 제철 음식, 때에 맞는 음식을 말한다. 절에서는 자연에서 취한 식재료를 원형질 그대로 조리해 먹되 각 식재료가 부족한 기운을 다른 식재료로 보완한다. 여기에 발효된 음식을 함께 먹어야 건강에 더욱 좋다. 간장, 된장, 고추장 등 발효 음식은 식재료의 독성을 중화시키고 몸의 영양소 흡수를 돕는다. 사람들은 절집 음식이 짜다고 말하는데 사실 바깥 음식이 더 짜다. 다만 화학조미료와 단맛, 매운맛이 짠맛을 가리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다. 절집에서의 짠맛은 주로 메주를 발효시킨 간장으로 맞춘다. 발효 간장은 그냥 짠맛이 아니라 각종 미네랄과 단백질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사찰음식이 소화가 잘되는 이유는 발효 간장으로 간을 맞추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장은 사찰음식에서 아주 중요하다. 요리 잘하는 스님이라 하면, 장을 잘 담그는 스님을 가리킨다. 맛있는 음식은 넘쳐나는데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은 늘어나고 있다. 환경과 식재료가 오염된 탓이다. 그런데 스님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젊어 보이고 건강한 신체를 지녔다. 스님들 평균 수명은 80세가 넘고 90세 이상 노스님들도 많다. 자연에서 취한 건강한 재료로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먹으며 수행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사찰음식 문화는 종교를 떠나 몸과 마음이 지친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근전
- 사찰음식의 ‘약효’를 확인한 경험이 있나.

“내가 직접 겪지 않았나. 사찰음식을 제대로 알기 전 무리한 수행 중에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1년밖에 살지 못한다 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몸을 갖고 실험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가공식품을 끊고 몸에 무리를 주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아침은 가볍고 맑게, 점심은 든든하게 먹되 나물을 들기름에 찍어먹기도 했다. 저녁은 아침보다 많게, 점심보다 적게 먹고 밤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직접 담근 장류와 김치를 먹고 제철에 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었다. 충분히 쉬면서 명상과 염불로 마음을 다스렸다. 내 몸에 일어나는 사찰음식의 효과를 제대로 가리기 위해 자연식이 아닌 것은 철저히 가렸다. 얼마 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크게 놀라더라. 이렇게 나아지는 경우는 천명 중 한명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일을 요즘도 자주 목격한다. 태국에서 갑각류 알레르기를 심하게 일으킨 스님이 가져간 물김치를 들이켜고 싹 나은 경우도 있었고, 아토피가 심했던 지인의 아들이 절에서 담근 집간장을 약처럼 먹고 낫기도 했다.”

- 사찰음식 사업 제안이 많았을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이 좋은 삶을 살도록 돕는 불교 수행자다. 사찰음식 사업을 함께 하자, 김치 공장을 차리자, 사찰음식 전문점을 내보자, ‘선재’라는 브랜드를 만들자 등 끈질긴 제안들이 쏟아졌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오해를 받아 지쳤을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으로 들어가 수행하기로 결심했다. 그때 알고 지내던 내과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스님, 중생은 아파서 신음하는데 스님 혼자 도 닦으러 가면 부처님이 좋아하실까요?”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결심은 한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늘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의 사찰음식 강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스님의 노력으로 사찰음식이 대중화됐다. 문제점은 없는가.

“사찰음식 간판을 건 식당이 곳곳에 문을 열고 전문가가 늘었다. 사찰음식이 상업화되고, 일반음식과 만나 왜곡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사찰음식의 가치가 흐려졌다. 진정한 ‘퓨전’이란 새로운 재료와 조리법을 마구 합치는 게 아니다. 사찰음식의 본질을 지키면서 시대에 맞게 각 음식의 장점을 결합해야 한다.”

- 최근 불교계에서도 육식에 대한 찬반여론이 있다.

“사찰음식은 수행자들이 오랜 세월 몸과 마음의 조화를 이루려 고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예를 들면 정적인 음식을 먹으면 내면이 충실해지고 동적인 음식을 먹으면 힘이 밖으로 뻗쳐 자연히 채식을 권장하게 된 것이다. 물론 부처님이 반드시 육식을 금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스님들도 몸이 허하면 육식을 먹기도 했다. 다만 ‘자신을 위해 죽이는 것을 직접 보지 않은 고기’ 등 몇 가지 조건을 갖춘 정육(正肉)이어야 한다.”

- 아이들 먹거리에 특히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아이들이 좋은 음식을 먹고 행복해져야 세상이 행복해진다. 아이들이 편식하는 이유는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 캠프 등에서 강의를 할 때는 식재료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얘들아 스님이 이 무를 500원에 샀어. 그런데 이건 그냥 500원짜리가 아니야. 여기에 오기까지 땅, 물, 바람, 햇볕이 필요했고 농부의 손길을 거쳤어. 자연의 생명이 담겨 있는 거야.” 그리고 무를 잘라서 먹여본다. “물을 담고 있네, 바람을 맞아서 아삭아삭 소리가 나는구나, 햇볕을 많이 봐서 달구나”라면서 오감으로 맛을 본다. 그런 뒤에 갈아서 통밀가루를 섞어 부쳐 먹으면 얼마나 달고 맛있겠나. 자연과 농부아저씨, 음식을 만든 사람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도 꼭 해야 한다. 이렇게 배운 아이들은 모든 식재료를 귀한 생명으로 여기고 감사한다. 편식도 하지 않는다. 사실 어른들도 좋은 음식의 가치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함께 배워야 한다.”

-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달라.

“지금처럼 계속 많은 사람들에게 사찰음식을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 여건이 된다면 학교를 세워, 보다 전문적인 사찰음식 교육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혹시 몸과 마음이 힘든가. 그렇다면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내가 지금 무엇을 먹고 살고 있는지. 사람들이 사찰음식의 본질을 깨닫고 좋은 음식을 먹었으면 좋겠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요리와 음식을 통해 건강하고 행복하고 맑은 영혼을 갖도록 돕고 싶다. 그것이 내가 요리하는 이유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선재 스님은

△1956년 경기 수원 출생 △1980년 경기 화성 신흥사로 출가 △수원 봉녕사 승가대학 대교과 졸업 △중앙승가대학 사회복지학과 졸업 △전국비구니회관,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 기업, 학교, 종교기관, 프랑스 르 꼬르동 블루 등 강연 △저서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2017), ‘선재 스님의 이야기로 버무린 사찰음식’(2011) 등 △2016년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음식 명장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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