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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변방의 수도사’ 루터 인쇄 미디어 탁월한 활용 ‘종교개혁 아이콘’으로 뜨다

입력 : 2017-10-20 22:58:45 수정 : 2017-10-20 16: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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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커 라인하르트 지음/이미선 옮김/제3의공간/2만5000원
루터/폴커 라인하르트 지음/이미선 옮김/제3의공간/2만5000원


올해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다. 관련 서적들이 출간되는데 대부분 루터는 ‘선’이고, 로마교황청은 ‘악’이 됐다. 교과서에 등장한 ‘면벌부 판매’ 등으로 이미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구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르네상스 시기 교황제도에 관한 세계적 연구자 폴커 라인하르트는 그 이유에 대해 종교개혁사를 살펴보는 기본적인 사료로 루터가 남긴 글만을 다뤄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로마 바티칸이 종교개혁 동안 루터에 맞서며 펼친 주장, 판단, 그 속에 담긴 가치관 등이 당시 역사적 상황과 종교개혁의 전개를 반영하고 있음에도 오늘날까지 적절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루터 - 신의 제국을 무너트린 종교개혁의 정치학’에서는 변방의 수도사가 일약 종교개혁의 아이콘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다루는 데 바티칸 문서고에 잠들어 있던 당시 교황청의 회의록, 칙서, 외교관들의 보고서를 인용한다. 마르틴 루터와 그 지지자들의 글과 교차 검토하면서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종교개혁의 연대기를 입체적으로 서술한다.

또 저자는 변방의 수도사가 교황에 맞서는 방법에 주목한다. 당시 유럽 기독교 문명권의 변방이자 그 안에서도 벽지라 할 수 있는 독일 동북부 비텐베르크 출신의 일개 수도사는 어떻게 교황에 맞설 수 있었을까. 이 책에서는 루터의 탁월한 미디어 활용에 초점을 맞춘다. 루터는 논쟁이 끝날 때마다 마치 오늘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방불케 하듯, 곧바로 기록하고 인쇄하고 배포했다.

루터는 교황청 사람들 앞에서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고, 토론에서는 어눌했지만, 루터가 펴낸 인쇄물에서는 그가 원하는 이미지처럼 상대의 모순을 신랄하게 공박하고 믿음의 확신에 가득 찬 종교개혁가로 그려졌다. 이를 통해 루터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했고, 독일 민중과 소외받는 지식인 및 성직자들의 분노를 끌어내 지지를 결속시키면서 종교개혁을 더욱 과감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다.

반면 교황청 사람들은 루터의 미디어 전술을 얕잡아봤다. 이 책 곳곳에서는 루터가 작성한 수많은 인쇄물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교황청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다. 뒤늦게 교황청은 루터의 글이 가진 영향력을 깨닫고, 인쇄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만 이들은 소위 문명의 언어라는 라틴어를 고집해서 독일 민중 대부분을 독자에서 제외시켜 버렸다. 루터와 그 지지자들의 방해로 인쇄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하거나, 인쇄물을 사재기 당해 배급이 막혀버리기도 한다. 저자는 루터가 집요할 정도로 저술, 인쇄, 배급에 매달리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그가 종교개혁 논쟁의 승패가 미디어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보았음을 보여준다.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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