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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역사 속 스포츠] 2006년 10월 26일 프로레슬러 김일 사망…헤딩으로 시대를 위로

입력 : 2017-10-22 08:11:00 수정 : 2017-10-22 08: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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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프로레슬링 경기에서 상대에게 공포의 헤딩 선물을 하고 있는 김일(왼쪽)의 모습. 악당의 횡포에 당하기만 하다가 회심의 헤딩 한방으로 정의를 실현한 김일에게 고단한 삶을 살아야만 했던 사람들은 큰 위안과 기쁨을 얻었다.

[이번 주 역사 속 스포츠] 2006년 10월 26일 프로레슬러 김일 사망

이번 주 주인공은 헤딩으로 고단했던 시대를 위로한 프로레슬러 김일(1929년 2월 24일~2006년 10월 26일)이다.

김일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한국 프로레슬링 황금기를 주도한 인물이다. 그가 헤딩을 할 때면 온 국민은 통쾌함에 박수를 쳤다.

TV가 귀하고 별 볼거리가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김일 레슬일 경기 중계가 있는 날이면 동네 꼬마들은 TV수상기가 있는 집을 찾아가 까치발을 한 채 '박치기'에 감명 받았다.

다음날 학교에선 박치기, 코브라트위스트 등을 흉내내는 꼬마들로 넘쳐났고 친구를 들이받아 울고 불고 하는 아이들도 꽤 많았다.

타고난 장사였던 김일은 일본 프로레슬링계를 주름잡고 있던 역도산을 만나기 위해 1956년 27살 뒤늦은 나이에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밀입국 혐의로 체포돼 옥살이는 하는 등 우여곡절끝에 1957년 역도산 1기로 레슬링에 입문, 일본과 한국을 넘나들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덩치가 크고 반칙을 일삼는 상대에게 호되게 당하다가 '회심의 박치기'한방으로 전세를 역전하는 김일을 통해 사람들은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는 등 대리만족을 느끼며 열광했다.

보릿고개를 막 벗어나려던 시기에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던 김일은 '레슬링은 짜고 하는 쇼'다는 폭로 등이 터져 나오면서 인기가 조금씩 시들해지고 권투, 축구 등 다른 스포츠 경기 인기가 크게 올라가는 세태에 떠밀려 1970년대 후반 팬들 곁을 떠났다.

일종의 약속 대련이지만 숱한 '박치기'등에 따른 후유증과 여러차례 사기 등으로 어려운 삶을 이어가던 김일은 팬이었던 박준영 을지병원 이사장의 권유에 따라 1994년 영구귀국했다.

이후 10여년간 을지병원에서 입원치료를 하면서 후배양성, 프로레슬링 재건에 애를 쓰던 중 2006년 10월 26일 당뇨합병증, 고혈압, 만성신부전증과 심장혈관 이상에 의한 심장마비로 서울 상계동 을지병원에서 고단한 삶을 마감했다.

화장을 한 뒤 김일의 유골은 고향인 전남 고흥군 금산면에 안치됐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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