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신정근의인문상식] 제사, 그 내용과 형식

관련이슈 오피니언 최신 , 신정근의 인문상식

입력 : 2017-10-19 21:14:18 수정 : 2017-10-19 21:14:1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제사는 은혜에 고마움을 나타내는 의식 / 감사의 내용을 담는 새 형식의 창출 절실
우리는 추석이 되면 고향을 찾고 또 차례를 지낸다. 이렇게 추석 명절을 보내다 보니 이러한 삶의 제도와 문화가 얼마 전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먼 기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변화의 요구가 제기되면 조상 대대로 전해지는 전통을 존중하지 않고 감히 고치려고 하느냐는 반론이 기세등등하게 나오게 된다. 우리 사회는 설과 추석을 비롯해 명절을 보낼 때 제사와 관련해 집안에서 갈등을 겪기도 하고 고통을 겪기도 한다. 그 결과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한다든지, 간소하게 지낸다든지, 개별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상태이다.

사실 지금 개별 집안 또는 가족별로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제사의 기원을 따져보면 개별 가족이 자신의 조상을 제사 지내는 풍속은 없었다. 제사는 원래 불을 발명한다든지, 농작물을 재배한다든지, 집을 짓는다든지, 의복을 입는다든지, 인간에게 커다란 혜택을 주는 문화 영웅을 기념하는 의식으로 치러졌다. 인류는 자신들이 겪었던 불안을 평안으로, 불편을 편리로, 공포를 평화로 바꿔준 영웅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혜택을 받은 만큼 고마움을 나타내는 의식이 바로 제사였다.

인류는 초기 문명의 단계를 지난 뒤 종족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사회 질서를 구성하게 됐다. 이로써 ‘나’는 특정 가족의 소속으로서 공동체에 참여하게 됐다. 이렇게 개별 가족이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단위가 되자 제사도 변화의 물결을 거부할 수 없게 됐다. 문화 영웅과 공동의 시조처럼 공동체 전체가 기념해야 하는 경우와 조상처럼 개별 가족이 제사 지내는 경우로 이원화됐다. 공동체의 유대가 약해지자 문화 영웅의 제사보다 개별 가족의 제사가 더 중시되게 됐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날 개별 가정 단위로 조상을 모시는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제사의 역사와 문화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지금 지내는 제사가 인류 문화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변함없이 이어진 제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제사가 변해왔다면 앞으로 제사도 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 제사를 왜 지내는 것일까. 가장 기본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대상에 대한 감사의 의식이다. 그 대상은 생물학적 조상에 한정되지 않고 문화적 선조까지 포함된다. 이때 감사는 제사를 지내는 내용이라고 한다면, 음식 마련과 차례는 제사를 지내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대상에 대한 고마움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고마움을 표시하는 형식은 얼마든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바꿀 수가 있다. 공자도 의례에서 사람의 모양을 모방한 허수아비 용(俑)을 부정했고, 사치와 호화로운 복식을 검소하게 바꾸자고 주장을 펼친 적이 있다.

지금 우리는 명절에 음식 장만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또 그로 인해 가족 간의 갈등을 겪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고통을 계속 겪어야 할까 아니면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변화가 불가피할까. 변하지 않는다면 개별 가정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고 명절마다 재연되는 불행을 피할 수가 없다. 감사의 내용을 담는 새로운 형식의 창출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간소화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으므로 다음 명절에는 무엇을 어떻게 줄일까를 논의해 명절이 축제로 되는 길을 찾아야겠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동양철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