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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깨어있다”… 사드 갈등 뛰어넘은 교감의 장

입력 : 2017-10-19 20:16:33 수정 : 2017-10-19 21:4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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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서 11차 한중작가회의 열려 / 시인·소설가·평론가 등 / 韓·中 문인 40여명 모여 / 상대국 작품 읽고 토론 / “양국 문학 닮은 점 많아 / 급속한 사회발전 속 병폐 / 깨어있는 눈으로 봐야” / 작가의 책무와 갈 길 공감
“불경을 읽어보면 생로병사보다 이별이 더 큰 고통입니다. 하얀 목을 지닌 아름다운 소녀 정님이 누나가 어떻게 가고 오지 않는지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찬란한 문명을 창조한 한민족의 이별과 이산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동아시아 예술가들이 이별을 이야기하면 꼭 눈물과 상처와 고통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 시는 조용하게 절제하며 이야기하는데도 힘이 느껴집니다.”

지난 17일 제11차 한중작가회의가 열린 중국 지린성 창춘 쑹위안 호텔 회의실. 양국 시인들이 서로 상대방의 시를 읽고 토론을 벌이는 자리에서 중국 랴우닝성 작가협회 부주석으로 재직 중인 바오얼지 위안예 시인은 한국 이시영 시인의 ‘정님이’를 낭송한 뒤 품평을 하면서 “한국 시를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오늘 접한 한국 시들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이시영 시인은 “1970년대 한국 농촌의 젊은 노동 인력이 급속도로 도시 노동자로 편입되었는데 그중 하나인 정님이라는 소녀 같은 인물이 요즘 중국에도 없지 않을 것”이라면서 “한중작가회의에 6번째 참석하는데 한국문학과 중국문학이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 큰 것 같다”고 답했다.

17일 중국 지린성 창춘에서 열린 제11차 한중작가회의 개막식. 이 회의에는 한국과 중국 문인 40여명이 참석해 이틀 동안 소설과 시 분과로 나누어 작품을 교차 낭독한 뒤 토론을 벌였다.
한국과 중국 문인들이 매년 서로 오가며 양국 문학에 대해 탐색하고 토론하는 한중작가회의 11차 행사가 17~18일 중국 지린성 창춘에서 열렸다. ‘인문적 전통과 한중문학’을 주제로 이틀간 토론을 벌인 이 자리에는 한국에서 시인 김명인 이시영 송재학 이재무 조은 류인서 곽효환, 소설가 정찬 박상우 이현수 서하진 김언수 해이수 김덕희, 문학평론가 홍정선 김종회 우찬제 등 17명과, 중국에서는 장웨이민 지린성작가협회 주석, 량핑 쓰촨성 작가협회 부주석, 바오얼지 위안예 시인, 조선족 소설가 진런순 등 20여명이 참가했다.

개막식에서 장웨이민 길림성 작가협회 주석은 “작가는 문학의 육체적 매개체에 불과하고 문학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리가 교류하는 주요 인물”이라며 “우리는 때로 문학의 창조자가 될 수 있지만, 때로는 문학의 노복이자 운반공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작가가 위대하다면 그것은 문학이 위대하기 때문이며 작가는 단지 그 문학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망망한 문학 속에 빠져드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자세일 것”이라고 역설했다. 한국측 좌장으로 참석한 문학평론가 홍정선(인하대 국문과 교수)은 “최근 중국 여행에서 어디를 가든 ‘문명’이라는 단어를 구호로 자주 마주쳤는데 이는 정신적 물질적으로 서양을 능가하겠다는 야심찬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았다”면서 “중국이나 한국이 서양을 능가할 수 있는 길은 서양을 배우면서 우리 자신의 역사를 소중하게 돌아볼 때 가능하다”고 화답했다.
제11차 한중작가회의 소설 분과 토론 현장. 양국 문인들은 발췌 번역한 작품들을 교대로 소리내어 읽고 벌인 토론에서 여러 문제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개막식 이후 양국 문인들은 소설과 시분과로 나뉘어 발췌 번역한 작품들을 교차 낭독하고 토론을 이어갔다. 허난성 문학예술연합 주석이자 루쉰문학상 마오둔문학상 등을 수상한 소설가 사오리의 ‘꽃에 깃든 사연’에는 어린 시절 떠나보낸 딸의 손톱에 물들여준 소도홍(小挑紅)이 그리움과 슬픔의 매개체로 등장한다. 한국 소설가 김덕희가 봉숭아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보여주면서 같은 꽃인지 묻자 사오리는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첫눈이 내리기 전까지 봉숭아 꽃물이 손톱에서 지워지지 않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속설을 들려주자 사오리도 중국에 비슷한 속설들이 있다고 답했다. 고부간의 갈등을 다룬 마아이루의 ‘박쥐’를 낭독한 뒤 한국 소설가 서하진은 “한국에서는 최근 고부갈등이 거의 서로 거리를 두고 아예 관계를 맺지 않는 냉정한 경향까지 보이고 있는데 중국은 어떠냐”고 묻자 “중국은 완전히 며느리 전성시대”라는 답이 돌아와 좌중에 실소가 터졌다.
11차 한중작가회의에 참석한 양국 문인들의 기념사진.
이틀에 걸친 문학 토론은 역대 다른 회의보다 상대적으로 심도가 깊은 편이었다. 기조발제에서 중츄우스 ‘강남’ 편집장은 “병들고 멍든 세계를 문학이 치유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작가들이 초심을 버리지 않는 성실함은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한다”면서 “중국과 한국 작가들은 쾌속 발전의 와중에서 파생된 공통된 병폐들을 깨어 있는 눈으로 들여다보면서 이 세계의 그림자와 희망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회의는 사드 갈등 같은 외형적 관계 불안에도 문학이야말로 현실의 가벼움을 뛰어넘는 소통 창구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는 평가다. 그동안 한중작가회의가 양국의 문인과 문학을 탐색하는 형식이었다면, 이 같은 방식은 이번 11차로 마감하고 앞으로는 새로운 형식으로 양국 문인의 만남을 이어가야 한다는 게 주최 측의 의지다.

창춘(중국)=글·사진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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