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태를 부른 책임은 청와대에 있다. 지난 10일 김 재판관의 소장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자체가 문제였다. 당시 청와대는 “재판관 전원이 김이수 재판관의 권한대행직에 동의했다”고 근거를 제시했다. 그제 공개 입장 표명에서 드러났듯 청와대의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재판관들은 새 헌재소장이 취임하기 전까지 한시적인 대행체제에 동의했을 뿐이다. 청와대가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한 셈이다. 더구나 김빈 더불어민주당 디지털대변인이 14일 ‘힘 내세요 김이수’라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리고, 뒤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수모를 당한 김 권한대행께 정중하게 사과 드린다”는 글을 게시한 것은 인위적으로 여론을 왜곡하는 행위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도 청와대의 인식에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어제 “청와대는 신속히 후임 재판관을 임명할 예정이며, 9인 체제가 구축되면 당연히 재판관 중 소장을 지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은 법률안을 갖고 있어 그 입법을 마치면 대통령은 헌재소장을 바로 지명할 계획”이라고 했다. 보완 입법을 마치기 전까지는 소장을 지명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헌재 소장의 지명은 대통령의 당연한 의무인데도 국회 쪽에 공을 던져버린 것이다.
현행법은 헌재소장의 경우 재판관 중에서 지명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면서도 새로 6년 임기가 시작되는지, 재판관 잔여 임기만 주어지는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법상 미비한 점이 없진 않지만 1988년 헌재 출범 이래 이런 이유로 장기간 소장 공백이 생긴 적이 없었다. 청와대가 입법을 이유로 소장 지명을 계속 미룬다면 헌재에 코드 인사를 하려 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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