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높은 신용카드 대체 수단 주목/가격 변동성·결제 인프라 아직 걸림돌/정착땐 산업 비즈니스 모델 변화 초래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 가격이 오르면서 ‘투자자산’으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이들의 태생은 ‘화폐’다. 전 세계적으로 가상화폐를 화폐 또는 결제수단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심한 가격 변동성, 부족한 결제 인프라 등 아직은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 가상화폐가 기존 화폐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결제수단으로 활용되는 가상화폐
국내에서는 가상화폐가 오프라인 결제수단으로 널리 활용되지 않고 있다. 17일 현재 비트코인 오프라인 사용처를 알려준다는 사이트 ‘코인맵’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서울 47곳을 포함해 전국 118곳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표시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 사용 가능한 곳은 몇 되지 않는다. 기자가 코인맵에도 등록된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 문의하자 직원은 전혀 모른다는 반응이었다. 오히려 “인터넷에 그렇게 나와 있느냐”며 반문했다. 코인맵에 소개된 종로구의 한 카페는 사라졌다.
해외는 가상화폐 결제에 보다 적극적이다. 독일과 일본은 가상화폐를 지급결제 수단으로 인정했다. 특히 일본은 가상화폐 거래소와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비트코인 결제 인프라 구축 등 사용처를 확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캐나다, 영국 등에서는 비트코인 ATM이 수년 전 설치됐다. 스펜드비트코인, 스펜드어비트 같은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거래하는 중개 사이트도 있다.
가상화폐의 장점은 중앙관리기관이 없기에 국적에 한정되지 않고 환전 없이 세계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정치·안보·경제 이슈나 통화정책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총량이 유한하고, 시장의 수요·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며 결제 기능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디지털 금’으로 불리기도 한다. 홍기훈 홍익대 교수(경영학과)는 “가상화폐를 결제 기능을 가진 화폐로 활용하고 싶어 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화폐에 대한 로망이 반영된 것”이라며 “다만 화폐는 이용자가 많고 가치 변동성은 작아야 하는데, 모순적이게도 가상화폐는 변동성이 커야 이용자들이 많아진다. 화폐로 정착하려면 이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상화폐가 기존 화폐를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활용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새로운 기능을 갖춘 가상화폐는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이더리움은 블록체인에 스마트컨트랙트 시스템을 갖췄다. 어떤 조건하에서 계약이 이행되도록 강제하는 기능이다. 리플은 은행권 국제송금 기능에 특화돼 만들어졌고, 라이트코인은 코인 생성 주기를 단축해 대량 결제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동전 없는 사회’ 등 실물 화폐가 점차 퇴출되는 상황에서 가상화폐의 효용성도 주목받고 있다. 현금이 사라지면 신용카드 등이 지급결제를 대체하게 되는데, 신용카드는 수수료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가상화폐는 이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차현진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은 “저소득층의 경우 신용카드나 직불카드를 쓰면서 높은 수수료를 무는 것보다 가상화폐를 쓰는 게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 등 일부 중앙은행이 가상화폐 발행을 고민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김건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비트코인은 영원하지 않을 수 있고, 새로운 가상화폐가 그 자리를 대체하면서 가상화폐라는 흐름은 계속될 것으로 본다. 블록체인은 그것대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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