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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사람들은 생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경쟁하고 있을 뿐이에요./ 아득한 지평선 위에 있는 목적지에 도달하려 하는 거예요./ 그리고 너무 성급하게 목적지에 도달하려고 하기 때문에/ 숨이 차서 헉헉거리며,/ 지나치는 아름답고 조용한 전원의 경치를 하나도 못 보고 말이지요./ 그러고 나서 비로소 깨닫는 것은/ 이미 자기가 늙고 지쳤다는 것과/ 목적지에 도착하든 못하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길가에 주저앉아/ 작은 행복들을 산처럼 주어 모을 생각이에요….”

미국의 아동작가 진 웹스터가 쓴 ‘키다리 아저씨’에 나오는 글이다. 우리는 무한경쟁 시대에 살고 있다.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예쁜 개나리반 선생님한테 친구들보다 칭찬을 더 많이 들으려고 애쓴다. 학창시절에는 오직 숫자로 평가되는 성적표로 경쟁해야 하고, 대학 입시는 청소년시절 경쟁의 정점을 찍는다. 어른이 됐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책임이 가중되므로 생존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그래서 늘 바쁘고 피곤하고 지친다.

여유와 낭만은 게으름과 한심함으로 어느새 자리매김을 하고 의자는 하나인데 앉고 싶은 사람은 많아 늘 불안하고 조급하다. 그런 마음들이 삭막하고 이기심이 팽배한 사회를 만들고 그 속에 일원인 ‘나’ 는 외롭다.

우리가 잃고 사는 것은 무엇일까.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어 보는 일, 문득 걸음을 멈추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일, 우체국 창가에서 ‘사랑하는 이여’로 시작하는 말로 편지를 써 보는 일, 바로 느리게 걷기다.

우리는 늘 경쟁이라는 강박관념에 갇혀 있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가 언덕길을 내려오듯 멈추지 못한다. 빨리 달린다고 이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쉽게 지쳐서 삶의 의욕이 꺾이고 생기를 잃는다. 조금만 속도를 줄이면 주변을 잘 볼 수 있고 그만큼 마음이 편해진다.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피에르 상소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고요한 방에 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고 했다.

경마장의 말처럼 오직 앞만 보고 달리면 목표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을 하늘이 얼마나 맑은지, 길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가 얼마나 애교 있게 살랑거리는지, 나 자신이 얼마나 많은 장점이 있는 멋진 사람인지 모두 놓치고 만다. 그러나 긴 삶의 여정 곳곳에 벤치를 만들어 놓고 잠시 쉬며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주위를 둘러보면 참으로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오고 삶은 맛나게 풍요로워진다.

어느 가을날, 사랑하는 사람과 집 가까운 둘레길을 천천히 걸어 본다면 내 아내의 미소가 저리도 눈부셨나, 내 남편의 눈빛이 저리도 따뜻했나, 내 아이들의 말씨가 저리도 부드러웠나 하며 참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행복은 느리게 걷는 사람의 눈에 잘 띈다.

조연경 드라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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