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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小窓多明] 한국의 숨은 두 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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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16 21:37:57 수정 : 2017-10-16 2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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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독살한 명나라 심유경
조선 파병에 결정적 역할한 석성
그들을 재조명하고 은공 기리면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임진왜란이 정유재란으로 이어지며 막바지 전쟁 중이던 1598년의 추석이 사흘 지난 음력 8월 18일, 이 동아시아의 국제전을 일으키고 지휘하던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갑자기 죽는다. 그의 사망으로 울돌목 패전 이후 남해안 일대 왜성에서 장기 농성 중이던 일본군이 철수함으로써 길고 지긋지긋한 7년전쟁이 끝나게 된다. 도요토미의 사망은 예상밖이었다. 사망 당시 나이가 62세였으니까.

사망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뇌매독, 대장암, 이질, 요독증, 노쇠 등이 거론되는 가운데 독살설이 들어 있다. 누가, 언제, 어떻게 독살을 시켰단 말인가. 이 물음에 대답해 주는 사람이 바로 양부하(梁敷河)이다. 부산 동래 사람인 양부하는 12살에 임진왜란으로 일본군 포로가 돼 오사카에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바쳐진다. 도요토미는 양부하가 양갓집 아들이라고 하자 일본어를 가르쳐 주는데, 석 달 만에 양부하는 일본어에 능숙해진다. 침략전쟁 중의 전투는 조선에 나가 있는 장군과 병졸들의 몫이므로, 도요토미는 하는 일이 없어 근신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하게 하고 손뼉을 치며 놀면서 양부하가 총명하다며 항상 가까운 데 있게 했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이때 강화(講和·휴전)를 협의하기 위해 중국의 사신으로 심유경(沈惟敬)이 일본에 온다. 심유경은 도요토미를 만나 자리에 앉은 후 환약 한 개를 꺼내 먹는다. 두 번째 회견할 때에도 또 환약을 먹으니 도요토미가 괴상히 여겨 물었다. 사신이 “바다를 건너올 때에 습기로 인해 몸이 불편하므로 항상 이 약을 복용하는데 이 약을 먹으면 기운이 솟고 몸이 경쾌합니다”라고 하자, 도요토미가 “거짓말이 아닌가”하고 묻자 사신이 “감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한다. 그러자 도요토미는 “내가 일전에 교토에서 돌아와 몸이 매우 피곤한데 나도 복용하면 어떻겠소” 하니, 사신은 “좋습니다”라며 주머니에서 환약 한 개를 꺼내 주니, 도요토미가 반을 쪼개 주면서 “그대와 함께 나누어 먹으려 하오” 했다. 사신이 받아서 삼키니 도요토미가 한동안 눈여겨보다가 그가 팔뚝을 펴며 기운을 내는 모양을 보고 비로소 입안에 넣고 물을 마셨고, 다음날 아침에도 사신을 만나보고는 환약 한 개를 구해 나눠 먹었다.

이 약 가운데에는 독약이 들어 있었는데, 사신 심유경은 객관으로 돌아오는 즉시 해독약을 복용했다. 그러나 그런 정황을 모르는 도요토미는 이로부터 사지가 파리해지면서 점점 심해져 의원을 청해 약을 썼으나 효험이 없고 침으로 찔러도 피가 나오지 않게 됐다. 도요토미는 자신이 독에 중독된 것은 모르고 “어찌 산 사람으로서 혈액이 없을 수가 있느냐”며 희첩(姬妾)을 시켜 약쑥으로 뜸을 뜨다가 홀연히 말하기를, “내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겠다” 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사망 후 여러 희첩은 도요토미의 말을 좇아 문병하는 자가 있으면 다만 “약간 차도가 있다”고 대답하고, 일이 있으면 여러 희첩이 상의해 결정했는데 시신 냄새가 밖으로 풍겨감에 따라 대신들이 비로소 알게 됐다고 한다. 도요토미가 죽은 뒤 일본은 도요토미의 아들이 어린 관계로 휘하에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가 두 편으로 갈려 큰 전투 끝에 도쿠가와가 승리해 일본의 지배자가 됐고, 양부하는 이 전쟁이 끝난 뒤 비로소 조선으로 귀국하게 된다.

이 같은 전말은 이익(李瀷)선생의 ‘성호사설(星湖僿說)’ 인사문(人事門)편에 나오는데, 원래 판서 임상원이 펴낸 ‘염헌집(恬軒集)’에 실려 있던 것이었다. 양부하는 당시의 전쟁과 풍속을 모두 목격했으나 문자를 몰랐기 때문에 연도나 인명, 지명을 모두 일본어로 써서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강항(姜沆)이 쓴 ‘간양록(看羊錄)’과 대조해 보니 그 내용의 앞뒤가 부합하더라고 이익은 말한다. 특히 독이 든 환약을 먹은 문제는 달리 본 자가 없으니 외부에서 살펴서 알 일이 아니고 밤낮으로 옆에 있던 부하가 긴히 마음에 기억해 잊지 않았으니, 아마도 허황한 말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심유경은 일본과의 강화를 추진하면서 사기문서를 만들어 조정을 속인 죄로 도요토미가 죽기 1년 전쯤 처형된다. 이익은 양부하의 일생을 전하면서 “생각하건대 심유경이 우리나라에 정성을 다했는데 원통하게 극형을 당했으니 더욱 슬픈 일이다”라고 했다. 당초에 심유경이 평양에서 왜적과 땅을 그어 약속을 정해 50일 동안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 왜적이 한양에 웅거하고 있을 때에 심유경이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속여 “명나라에서 군사를 동원해 너희의 돌아갈 길을 끊어버리겠다”고 했기에 왜적이 남쪽으로 철수함으로써 당시 왕 선조가 도성으로 돌아오게 된 일, 그리고 도요토미가 죽어 부산에 있던 왜적이 철수해 돌아가고 나라가 평온해진 것이 모두 심유경의 공이라고 말한다.

심유경은 명나라 병부상서였던 석성(石星)이 발탁해 파견한 인물이다. 우리나라를 돕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석성도 일본과의 강화협상 과정에서 문서 위조와 협상 잘못 등의 책임을 물어 처형된다. 임진왜란으로 누란에 빠졌던 조선왕국을 구한 중국의 두 은인이 모두 억울하게 숨진 것이다. 도요토미를 독살해 임진왜란을 끝나게 한 심유경과 그의 상관 석성을 재조명하고 그들의 은공을 기려주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우리와 관계가 틀어진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겠는가?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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