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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승
누군가 일요일의 벽에 못을 박는다./텅텅 울리는 깡통처럼/

인내심은 금세 바닥을 드러낸다.//

일요일의 벽에 박힌 못은/월요일의 벽에도 여전히 매달려 있고

화요일의 벽에도 균열은 나아가겠지만//

이웃은 누구인가?/이웃은 냄새를 풍기는 자이며,/이웃은 소리를 내는 자이고

그냥 이웃하고 사는 자일뿐인데,//

좋은 이웃을 만나는 일은/나쁜 이웃을 만나는 일처럼 어렵지 않은가./

하지만 누가 이웃을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좋은 이웃으로 남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이웃에게는 냄새가 있고/소리가 있고 또 감정이 있다./일요일의 이웃은 냄새를 피우고

월요일은 소리를,/일주일은 감정들로 가득해/두드리고 두드려도/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우리는 틈이 갈라지는 벽을 이웃하고 있다./냄새와 감정을 나누는 이웃이 있다./

못과 망치를 빌리러 갈 이웃이 있다./이웃에게 못과 망치를 빌리러 가자.


원은희
집에서 편히 쉬고 있는 일요일이다. 그런데 이웃집에서 못 박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왜 하필 일요일인가? 월요일에 못을 박으면 안 될까? 일요일에 모처럼 가족이 모여 음식을 만들어 맛있게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말이다.

텅텅 울리는 깡통처럼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에 시인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낸다. 그러다가 층간 소음 때문에 살인까지 저질렀던 기사를 떠올리면서 시인은 좋은 이웃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한다. 나는 좋은 이웃인가? 우리는 좋은 이웃이든 나쁜 이웃이든 누구든지 이웃을 결정할 수 없다. 그리고 나 자신도 좋은 이웃으로 남기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이웃과 마찬가지로 일주일 내내 아이들이 쿵쾅대는 소리를 내면서 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나도 결코 좋은 이웃은 아니다.

우리는 틈이 갈라지는 벽을 이웃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틈이 갈라지는 그 벽을 통해 이웃과 냄새와 감정을 나눈다. 그처럼 이웃끼리 틈 사이로, 벽 사이로, 마음을 열자. 마음을 활짝 연 좋은 사람들에겐 소리와 냄새를 음악과 향기로 바꾸는 이웃이 있다.

박미산 시인·서울디지털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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