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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집’에는 ‘차진보’(次晉甫·진보에서 차운을 하다)라는 시 다섯 수가 있다. 그중 네 번째 시. “신선의 뗏목이 압록강 동쪽에서 오니/ 금수산하 이 무렵 가장 빼어나네/ 가락은 봉황생황에 섞여 북리를 시끄럽히고/ 누대는 신기루인 양 하늘에 누워 있네”(仙?來自鴨江東 錦繡山河此最雄 歌雜鳳笙喧北里 樓疑蜃市偃長空).

조선 문신 박이장(朴而章)의 시다. 그는 순천 사람이다. 임진왜란이 터지기 전 해인 선조 24년, 1591년 서장관으로 명을 다녀오고, 왜란 때에는 종사관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선조 26년에는 사헌부 지평으로 있었다. 이 시는 언제 썼을까. ‘북리(북쪽 고을)를 시끄럽힌다’고 했으니 명을 다녀오며 쓴 시다. 그때는 누르하치가 여진족 통일 전쟁을 시작한 즈음이다. 이듬해 의주로 도망한 선조. 그곳에서 1년 가까이 꼼짝을 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초라하게 여겨졌을까. 이 시를 다시 생각하지 않았을까. ‘누대는 신기루 같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금수산하. 산과 하를 바꾸면 금수강산이다. 금수는 수놓은 비단이다. 화려하다. 애국가에 나오는 화려강산. 똑같은 말이다. 왜 금수라고 했을까. 강산 곳곳이 수를 놓은 듯 오색찬란하게 변하는 계절, 바로 가을 단풍철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그런 수식어를 쓸까. 툭하면 과장을 심하게 하는 중국 문인들. 쓰지 않을 리 만무하다. 화려한 명승지도 한두 곳이 아니다. 하지만 모화(慕華)에 찌든 일부 조선 문인도 중국을 금수강산이라고 한 적은 없다. 왜? 봄이면 황사바람, 가을·겨울에는 북풍 모래바람이 들이치는 북중국. 단풍이 고울 리 없다. 그러기에 박이장은 압록강에 이르러 소중한 금수강산을 다시 깨친 것이 아닐까.

단풍은 풍흉을 점치는 잣대이기도 하다. 정조 23년, 1799년 홍천 유생 이광한이 조정에 올린 농법의 한 대목, “단풍색이 고우면 보리 풍년이 든다.” 아름다움과 풍년은 함께하는 걸까.

곳곳이 울긋불긋해진다. 산야도, 고궁도, 집 마당도. 저마다 감탄사를 쏟아낸다. “올해 단풍은 참 곱기도 해라.” 풍년이 오는 걸까. 신문을 들추면 보게 되는 시커먼 정쟁(政爭) 소리. 감탄은 이내 사그라들고 만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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