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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시대 연 세키가하라 전투 1600년 10월21일 일본 혼슈의 중심부에서 벌어진 세키가하라(關ヶ原) 싸움은 전쟁 같은 전투였다. 일본의 센고쿠(戰國)시대를 마감하고 도쿠가와(德川)시대(1603~1867)를 열었으니 일본 역사상 가장 중대한 싸움의 하나였다. 하지만 그런 역사적 의미가 무색하게 불과 3시간 만에 사실상 끝장이 났으니 어쩔 수 없는 ‘전투’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불과 2년 만에 일어난 이 싸움은 임진왜란의 속편 같은 데가 있다. 임진왜란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죽음으로 끝났다면 이 싸움은 그의 죽음으로 인해 일어났으니 임진왜란과 음영이 뒤바뀐 흑백필름 같은 데가 있다.

도요토미가 죽자 오래전부터 기회를 노리던 경쟁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도요토미가(家)에 충성하는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가 싸워 도쿠가와가 이긴 것이다. 임진왜란에 가장 소극적으로 참가해 그 존재도 비치지 않던 도쿠가와 세력이 거꾸로 승리한 데서도 그런 흑백필름 같은 면이 보인다.

임진왜란을 사실상 선도한 두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서로 적이 되어 싸운 것도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예상됐던 장면이었다.

일본 전국시대에 관한 대표적인 작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소설 ‘숙적(宿敵)’에 비친 두 장수는 임진왜란 당시 줄곧 설전을 벌였다. 예를 들어 서군을 지휘하던 고니시가 조선과 명의 연합군에게 평양을 탈환당하자 가토는 “어찌 빼앗았던 성을 다시 빼앗긴단 말인가. 나는 함경도까지 무인지경으로 휘저었는데…” 하는 식으로 공박을 했다. 이에 고니시는 “너는 활을 가진 조선군과만 싸웠지 않느냐. 나는 총을 가진 명나라 대군과 싸워야 했다”고 응수하는 식이었다.

그 숙적들이 이제는 말이 아닌 칼로 싸우게 된 데서도 그런 앙숙관계를 이용할 수 있었던 도요토미의 부재가 새삼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양평(언론인)

△1793년 10월16일 프랑스 루이16세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처형

△1972년 10월17일 박정희, 유신 단행

△1867년 10월18일 미국,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 매입

△1948년 10월19일 제주 4·3사건 진압 거부한 국방경비대 14연대 봉기

△1944년 10월20일 요시프 브로즈 티토, 소련군과 함께 베오그라드 해방

△1600년 10월21일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승리

△1941년 10월22일 친일세력, 조선 임전보국단 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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